박남진(53) 간석목재산업 대표는 50대 초반이지만 이미 자녀들에게 유산을 상속했다. 유산 품목은 나눔이다. 15년 전 딸의 이름으로 NGO에 약정 기부를 시작한 그는 점차 기부 금액을 늘렸다. 박 대표의 개인 기부와 딸의 기부를 합친 누적액이 1억원을 넘어섰다. 박 대표는 이런 나눔이 “1세대 신앙인인 할머니와 2세대인 아버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가풍”이라고 말했다. 지난 10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만나교회에서 박 대표를 만나 나눔을 유산으로 물려준 이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박 대표는 2008년 기독 NGO를 통해 정기 기부를 시작했다. 기사에서 결식아동들의 상황을 접한 것이 계기였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던 딸과 같은 나이의 학생과 1대1 결연을 하게 됐다. 10년 전부터는 월드휴먼브리지(대표 김병삼 목사)를 통해 본격적인 기부를 시작했다.
월드휴먼브리지는 박 대표가 장로로 섬기는 만나교회가 세운 단체다. 2009년 설립 후 지금까지 19곳 국내지부와 4곳 해외지부에서 다양한 나눔과 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월드 휴먼브리지를 택한 건 김병삼 목사의 설교 때문이다. 박 대표는 “전도를 전면으로 내세우진 않고 순수한 나눔의 목적으로 법인을 운영하고 싶다는 목사님의 설교에 공감해 기부를 시작했다”며 “월드휴먼브리지가 설립 이후 이 철학을 지켜나가는 모습이 신선해 보인다”고 말했다.
박 대표의 나눔은 아버지 고 박순규(내리교회) 장로의 영향이다. 부친은 1968년 간석목재산업을 세웠다. 일가친척뿐 아니라 이웃이 어려운 일을 당하면 발 벗고 나섰던 부친이다. 곤란에 처한 사람을 외면하지 못하는 성품 탓에 손해를 보던 때가 더 많았다. 박 대표는 “아버지는 항상 자식들에게 재물을 탐하지 말고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말라고 가르치던 분”이라며 “어린 시절에는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왜 저렇게까지 하시나’ 생각하곤 했는데 지금은 어렴풋이 이해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발인하는 날 새벽, 꿈속에 찾아오셔서도 그 말씀을 하셨다”며 “물질을 흘려보내라고, 사랑을 나누고 남들에게 손해를 끼치지 말라던 음성이 현실처럼 생생했다”고 전했다. 박 대표는 이 말을 부친의 유언으로 가슴에 새겼다. 그리고 그대로 실천했다.
한 번에 거액을 기부하면 더 좋겠지만, 사는 동안 지속적으로 이웃에 물질을 흘려보내는 것도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생전 유산기부’의 개념이다. 박 대표는 “돈이 모이면 욕심이 생긴다. 그러면 나눔에 대한 마음은 줄어들고 급기야 기부를 중단할 수도 있다”며 “그래서 조금씩 흘려보내는 방법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생전 유산기부라는 말이 거창하게 보이지만 이렇게 일상에서 조금씩 실천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나눔을 강조한다. 기부를 습관이자 삶의 일부로 만들어 주기 위해 어릴 때부터 소액 기부를 하도록 이끌었다. 박 대표는 “돈을 많이 벌고 나서 기부를 시작하려면 쉽지 않다”며 “자녀에게 축적된 부를 물려주는 것보다 나눔의 정신을 심어주는 것이 자녀의 인생을 진짜 행복하게 만드는 현명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나눔은 그 자체로 의미가 크지만, 자녀들에게는 더욱 특별한 유산”이라고 덧붙였다.
성남=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