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다시 만납시다!”
요즘 국민의힘 TK(대구·경북) 의원들 회식 자리에서 종종 등장하는 건배사라고 한다. 국민의힘의 한 TK지역 의원은 “웃으며 나누는 건배사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뭇 비장한 구석이 있다”면서 “TK 지역에서는 아직도 ‘공천=당선’ 공식이 유효하고, 아무도 내년 4월 총선 공천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벌써 총선 공천을 둘러싼 내전이 시작된 분위기다. 지역구 의원이 있는 곳에 비례대표 의원이나 용산 대통령실 인사가 도전장을 내미는 형식이다. 그러다 보니, 내부 경쟁 과열로 잡음이 일기도 한다. 한 영남권 중진의원은 14일 “같은 편끼리 예선전에서 너무 치열하게 싸우다가 정작 본선인 총선에서 분열이 발생할 수도 있다”면서 “당 지도부가 과감하게 내부 교통정리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벌써부터 사전 선거운동 논란
총선 예비후보로 등록하기 이전에, 선거를 목적으로 한 정치 활동은 공직선거법이 금지하는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하기 때문에 내전은 ‘소리 없이’ 진행된다. 하지만 파열음까지 감출 수는 없다.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은 지난 3월부터 4선 홍문표 의원이 현역으로 있는 충남 홍성·예산에서 명함을 돌리고 대통령 시계를 나눠주면서 사전 선거운동을 벌였다는 의혹을 받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대구 동구을은 일찍이 ‘기싸움’이 시작된 지역구다. 현 지역구 의원은 지난 3월 지명직 최고위원에 임명되면서 당 지도부에 입성한 강대식 의원이다. 대구 동구 토박이인 강 의원은 2006~2014년 두 차례 동구의회 의원을, 2014~2018년에는 동구청장을 각각 지냈다.
대항마로는 경북대 교수 출신의 비례대표 조명희 의원이 거론된다. 조 의원은 최근 자신을 “대구동구발전연구원장 조명희”라고 소개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례대표임에도 대구 동구라는 지역구를 앞세우면서 유권자들에게 존재감을 각인시키기 위한 의도로 분석된다. 조 의원은 지난 1월 대구동구발전연구원을 열고 교육·의료 등 대구 동구 지역 현안 관련 토론회를 개최하고 있다.
대구 중·남구의 임병헌 의원의 맞수로는 비례대표 한무경 의원이 떠올랐다. 다만 한 의원은 기업인 출신이라는 이점을 살릴 수 있는 다른 지역도 동시에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친윤 대 비윤’ 대결 구도도
서울 송파갑 지역구의 김웅 의원 경쟁자로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수행 실장을 맡았던 이용 의원이 꼽힌다. 유승민 전 의원과 가까운 김 의원은 비윤(비윤석열)계로 분류된다. 반면, 이 의원은 친윤(친윤석열)계에 속한다.
봅슬레이·스켈레톤 국가대표팀 감독 출신인 이 의원은 한국체육대와 올림픽공원이 있는 송파갑 출마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의원이 6864가구가 거주하는 송파 파크리오로 지난 4월 이사한 점은 이 같은 해석에 힘을 싣는다. 지역구 내에서도 가구수가 많은 아파트로 ‘전략적 이주’를 선택하면서 본격적으로 표심 공략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곳은 김웅 의원의 거주지이기도 하다.
서울 동대문을 당협위원장인 김경진 전 의원과 허은아 의원의 ‘친윤 대 비윤’ 대결 여부도 관심을 끌고 있다. 허 의원은 지난해 12월 이준석 대표 체제에서 서울 동대문을 당협위원장으로 내정됐지만 최고위원회의 최종 의결을 받지 못했다. 이후, 허 의원은 심사에서 탈락해 김 전 의원에게 자리를 넘겨줬다. 허 의원은 최근 지역 행사에 높은 참여율을 보이며 의욕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열 내부경쟁에 ‘악영향’ 우려도
전현직 의원 간 대결도 관전 포인트다. 조수진 의원은 2021년부터 서울 양천갑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최근 공천 경쟁자로 재선 출신 정미경 전 의원이 부상했다. 정 전 의원은 지난 5월 주소지를 양천갑으로 옮기고 지역 행사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 강동갑은 ‘대변인 대 대변인’ 대결 구도다. 원내대변인인 전주혜 의원(비례대표)과 윤희석 대변인이 맞붙을 전망이다. 전 의원은 지난해 12월 윤 대변인을 누르고 서울 강동구갑 당협위원장직을 차지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강동갑 당협위원장을 맡았다가 자리를 내준 윤 대변인은 방송 활동을 통해 인지도를 높이면서 설욕전을 준비하고 있다.
중진의원에게 ‘뉴페이스’가 도전장을 내민 곳도 있다. 3선 한기호 의원의 춘천시·철원군·화천군·양구을 지역구에는 정치 신인인 이민찬 상근부대변인이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이 부대변인은 당직을 맡기 전까지 강원도청 정책특별보좌관으로 일한 바 있다.
옆 동네인 춘천시·철원군·화천군·양구갑 지역도 격전이 예상된다. 비례대표 노용호 의원이 재선을 노리고 있지만 춘천 출신의 허인구 전 G1방송 사장이 도전장을 내밀 가능성이 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일찍부터 과열된 분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한 초선의원은 지도부를 겨냥해 “공천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지도부가 미리 마련하지 못하니, 이런 사단이 빚어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수도권 의원은 “특히 수도권은 지난 총선 참패로 조직이 약해져 있는데, 이른 내부경쟁으로 오히려 유권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박성영 구자창 기자 ps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