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예수] 맨땅서 청년 사역…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산다” 늘 기도

입력 2023-08-12 03:03
최근 서울 관악구 은정교회 예배당 ‘더 워십하우스’에서 만난 최상일 목사. 그는 “24시간 365일 끊임없이 예배하며 나라와 민족, 다음세대, 열방과 이스라엘을 향해 생수의 강을 흘려보내는 교회가 되고자 은정교회의 예배당을 더 워십하우스라 이름하였다”면서 “더 워십하우스가 다시 오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기도의 집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최상일(50) 은정교회 목사는 목회자의 길을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서울 예광교회 원로 최덕순 목사(2017년 별세)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최 목사는 두 형, 최상윤(예광교회) 최상훈(화양교회) 목사에 이어 감리교신학대를 졸업했다. 최 목사는 “워낙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자라와서 어려서부터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당연한 것이 되어 있었고 그 관성으로 목회자까지 됐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 관악구 아담한 숲속에 자리 잡은 교회에서 만난 최 목사는 목회자로서는 어쩌면 부끄러울 수도 있는 이야기까지 담담하게 들려줬다.

불성실한 신학생

최 목사는 “감신대 시절 정말 불성실한 학생이었다”고 고백했다. 처음 입학해서는 친구들을 몰고 다니며 당구장에서 살기도 했다. 수업 때 친구들이 준비한 발제문을 챙겨 시험을 치르면서 어떻게든 졸업만 하자는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신학 과목보다는 교양 과목에 더 관심이 많았다. 최 목사는 “목회 현장과 너무나 동떨어진 학풍 때문에 불만이 많았다”면서 “당시는 학교에서 성경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학생들이 조롱받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최 목사는 “나중에서야 그동안 학교를 안타깝게 생각한 것이지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감신대에서 2017년부터 3년간 영성 수업 지도교수로 출강한 것이 계기였다. 당시 최 목사는 학문에만 매몰된 학생들이 하나님을 만나도록 많은 열정을 쏟아부었다. 수업도 수업이지만 기도 시간을 마련하고 영성 집회 프로그램도 이끌었다. 최 목사는 “기도회를 인도할 때 성령의 강력한 임재 속에 많은 학생이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모습을 봤다”면서 “그 무렵 감신대에 많은 예배 모임이 생기는 열매를 봤다”고 말했다.

회개의 연속, 카투사 군 생활

최 목사는 용산 미군 부대에서 카투사로 복무했다. 자대 배치 전 교육을 받던 중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입대 전 작정했던 40일 새벽 기도를 채우지 못하고 군 생활을 시작한 최 목사는 이번에는 ‘자대 배치받으면 군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지만 막상 용산에 군종병으로 자대 배치를 받았지만 신우회 모임엔 나가지 않았다.

최 목사가 근무했던 사우스포스트 채플에서는 미군과 카투사 사이에 갈등이 많았다. 그는 “특히 미군 개신교 목사와 천주교 신부에게 카투사들이 모욕적이고 억울한 처우를 많이 당했다”고 전했다. 최 목사는 미군 내 인권 기관에 제소까지 할 생각으로 동료 카투사를 모아 반기를 들었다. 하지만 한국군 상관이 개입해 무산됐다.

그러다 상병 때 방독면용 안경을 맞추기 위해 간 미군 병원에서 녹내장에 안압도 높다는 판정을 받았다. 충격 속에 그동안 잊고 있었던 하나님께 한 약속이 떠올랐다. 이때부터 회개 기도를 시작했다. 힘든 군 생활 중에도 새벽 기도를 나갔고 신우회 회장으로 뽑혀 ‘왕성하고 파격적인’ 신우회 활동을 펼쳤다.

하나님께 드렸던 서원을 지키면 눈을 낫게 해주실 거라고 기대했지만 결국 차도가 없이 제대했다. 최 목사는 제대 직후 경기도 광주에 있는 기도원에 올라갔다. 기도가 잘 안 됐지만, 대신 하나님은 사무엘서를 읽으라는 마음을 주셨다.

“사무엘서를 읽다가 다윗이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자에게 손을 대지 않겠다’라고 하는데 아는 말씀이지만 그날은 제 머리를 때리더라고요. 갈등을 빚었던 미군 신부와 목사가 떠올랐어요. 하나님이 세운 권위에 ‘목사가 목사다워야 한다’고 험한 말도 했었어요. 다윗의 신앙고백 앞에 크게 뉘우치고 부대를 찾아 신부님께 무릎 꿇고 사죄했습니다. 목사님은 이미 한국을 떠난 상태였어요.”

청년 사역

감신대 신대원을 2000년 졸업하고 선교사로 서원한 최 목사는 작은 형(최상훈 목사)이 사역하던 아프리카를 거쳐 미국 알래스카로 떠난다. 동토의 땅에서 빈민들과 함께하고 외로운 한인 2세들과 어울리며 그들에게 꿈을 심어줬다. 최 목사는 “당시 청년들에게 나라와 민족을 향한 비전을 주는 사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홀리위크의 모태가 된 서울 관악구 신림사거리 거리 찬양 모습.

그 사명은 4년간의 알래스카 선교 사역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본격화됐다. 예광교회 청년대학부를 맡은 최 목사는 2005년 초부터 매주 목요일 서울 신림사거리에서 청년들과 함께 예배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한 주도 거르지 않고 5년 동안 거리 예배를 드렸다. 하나님은 무명 청년들로 시작한 모임을 관악기독청년연합회를 거쳐 서울기독청년연합회로 만들어 주셨다.

최 목사는 2010년부터 13년 동안 ‘홀리위크’라는 이름으로 매년 일주일간의 부흥 집회를 이끌고 있다. 그는 “대개 연합 집회들은 대형교회나 유명 선교단체가 주도하지만 홀리위크는 무명의 청년들이 조직 대신 몸으로, 재정 대신 눈물과 금식으로 사역을 이어오고 있다”면서 “하나님의 부흥 방식은 세상의 가장 낮고 천한 자들을 사용하셔서 그분의 위대한 일을 이루게 하신다”고 말했다.

서울기독청년연합회 대표인 최상일 목사가 ‘2018 홀리위크’ 서울광장 집회에서 결단의 시간을 인도하고 있다.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산다

청년 사역에 열정을 쏟아붓고 보람을 느끼던 30대 중반, 최 목사는 신앙적 고뇌에 빠진다. 그는 “내가 믿고 가르치는 말씀대로 살아내지 못하는 내 삶을 보면서 ‘내가 목회를 해도 되나’ 하는 의문이 들고 구원의 확신까지도 흔들렸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복음의 확신에 차 있던 감신대 동기가 소개한 ‘복음학교’에서 회심을 경험한다. 최 목사는 “그 회심은 환희에 찬 구원의 감격 같은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사는 것이 실제가 되는, 정말 심적 죽음의 상태 그 자체였다”면서 “너무 낮아지고 비참해져서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은 상태였는데 놀랍게도 그때부터 목회와 사역의 현장에서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당시 최 목사는 설교 전에 “저는 죽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저는 죽고 예수님이 임재하십니다. 저는 죽고 예수님만 영광 받으십니다”라고 늘 기도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찾아온 평안

2021년 코로나19가 한창일 때였다. 지속적인 두려움증이 찾아왔다. 아주 사소한 것조차 무섭고 온종일 심장이 쿵쾅거렸고 약간의 음료 외에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그저 예배당 의자에 누워 “하나님 도와주세요”라고만 울부짖을 뿐이었다. 최 목사는 “당시 누워 있는 저를 위해 어머니가 기도해주시다가 어떤 예언적 선포가 나왔다”면서 “그 선포를 들을 때 ‘아, 그러면 다 해결됐네,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네’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 온몸에서 나를 괴롭히던 두려움의 영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최 목사는 두려움증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의 성경적 개념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마음의 평안을 위해 성령 충만을 갈구했다. 하지만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는 말씀을 통해 ‘모든 걸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돌보시고 하나님이 돌보시기 때문에 평안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당시 최 목사는 “주님께 맡깁니다. 주님께 맡기면 주님이 돌보십니다”라는 말을 구호처럼 달고 살았다. 최 목사는 “목사가 이런 경험까지 이야기한다는 것은 상당히 부끄러울 수도 있다”면서도 “심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제 경험이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예배의 기쁨을 사모하라

요즘 최 목사에게는 마음속에 새로운 구호가 하나 생겼다. ‘예배의 기쁨을 사모하라’다. 그는 “장난감 자동차에 푹 빠졌던 아이들도 어른이 돼서 진짜 자동차를 몰게 되면 장난감에 흥미를 잃는 것처럼, 죄가 주는 즐거움은 예배의 기쁨을 만나면 힘을 잃어버린다”면서 “저는 그 기쁨을 누리고 또한 그 기쁨을 사모하며 예배 중심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2021년 7월 더 워십하우스 입당예배 장면.

최 목사에게 현재 기도제목을 물었을 때 답은 모두 예배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은정교회 예배당은 부지가 강제수용될 위기 속에서 온 성도의 기도 속에 살아남았고, 2년 전 ‘더 워십하우스(예배의 집)’로 새롭게 태어났다. 최 목사는 “더 워십하우스가 다시 오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기도의 집이 되기를 원한다”면서 “저 또한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이곳에서 예배하다가 주님을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최 목사는 또 군종병으로 섬겼던 사우스포스트 채플을 놓고 기도하고 있다. 용산 미군 기지 이전으로 어떤 용도로 쓰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예배하고 기도하는 ‘국가기도센터’가 될 수 있도록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함께 1년 6개월 넘게 매주 부대 입구에서 기도회를 갖고 있다.

“저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우리와의 사랑과 교제라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어떤 이유나 논리가 아니라 그냥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무언가를 주셔서가 아니라 그저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좋기를 원합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진실한 예배라고 믿습니다. 저 자신부터 율법의 형식에 머물지 않고 예배의 기쁨을 누리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다윗이 왕이기 전에 예배자였던 것처럼 목회자이기 전에 예배자이고 싶습니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