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안녕,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입력 2023-08-11 04:02

단골 세탁소에 들어서려면 고개를 약간 숙여야 한다. 천장에 걸어둔 세탁 비닐이 머리를 스치기 때문이다. 세탁물을 찾으러 왔다고 말하면 주인아주머니는 집게가 달린 기다란 막대기를 들고 마치 감을 따듯 옷을 찾아주곤 했다. 자개가 박힌 재봉틀도, 자전거 안장 모양의 무쇠 다리미 거치대도 시간의 손때가 묻어 오래되고 낡았다. 이사 온 뒤 이 세탁소를 단골로 정해두고 다닌 지 벌써 4년째다.

주인아주머니의 솜씨는 깔끔했다. 손님 비위를 맞추려고 괜한 인사를 건네지도 않았다. 찬송가가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작게 틀어 놓고, 그저 묵묵히 스팀다리미로 옷을 다리거나 노란 줄자로 치수를 재며 차근차근 일감을 처리했다. 가끔 파마머리에 실밥이 묻어 있곤 했다. 그동안 나는 그 모습을 예사로이 보았다. 그러다 며칠 전 세탁소 앞을 지나가다가 안내문을 보게 됐다.

“지금까지 보내주신 성원에 감사합니다. 세탁소 정리 기간은 10월 31일까지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못내 아쉬워서 주인아주머니께 어찌된 사정인지 물었다. 이 자리에서 세탁소를 운영한 지 사십 년이 넘었는데 건물주가 가게를 빼달라고 한 모양이었다. 월세도 많이 올랐고, 딱히 갈 곳을 찾지 못해 큰일이라는 아주머니의 얼굴에 근심이 어렸다.

언제부턴가 내가 사는 동네에 갤러리와 이색적인 카페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새로 생긴 세련된 가게도 근사하지만 어쩐지 나는 한곳에서 오랫동안 자리한 세탁소에 더 눈길이 간다. 사십 년을 변함없이 한자리에서 일한다는 것은 어지간한 성실과 뚝심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단골 세탁소가 사라지는 것도 섭섭한데, 하물며 정든 일터를 쫓기듯 떠나야만 하는 주인아주머니의 심정은 오죽할까.

집으로 가는 길, 뒤를 돌아본다. 눈에 익은 공간이 기억의 뒤편으로 어렴풋이 사라질 것을 생각하니 씁쓸하다. 모든 것이 빨리 변해간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