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옥한 땅 찾아 날아가는 민들레 씨앗처럼… 곧 꽃피워야죠”

입력 2023-08-10 04:06 수정 2023-08-10 08:30
자립준비청년 이요한씨가 지난 7일 서울 은평구 한 음악연습실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3월 ‘민들레 홀씨’라는 노래를 발매한 싱어송라이터다. 오른쪽 사진은 공공환경 디자이너를 꿈꾸는 박선영씨가 후배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강연 자료를 보여주며 설명하는 모습. 이한형 기자
“메말라버린 땅에 뿌리를 내려도 보란 듯이 노란빛에 행복한 봄이 될 거야”

자립준비청년 싱어송라이터 이요한(27)씨는 지난 3월 싱글 발매한 노래 ‘민들레 홀씨’에 이런 가사를 적었다. 그는 자립준비청년을 민들레 씨앗에 비유했다. 매해 흩뿌려지는 민들레 씨앗에서 어른이 돼 세상에 나가는 자립준비청년의 모습이 보였다고 했다. 그는 가사에 씨앗들이 선선한 바람을 타고, 비옥한 땅에서 꽃피우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당장 취업만이 꿈 아냐

지난 7일 국민일보는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고 싶어하는 이씨와 공공환경 디자이너를 꿈꾸는 박선영(26)씨, 두 자립준비청년을 각각 서울 은평구 한 음악연습실과 서울 동대문구 한 고시원에서 만났다. 이들은 성인이 되기 전에는 꿈을 갖는 것조차 사치였다고 했다. 대다수 자립준비청년처럼 취업을 위해 특성화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고 여겼다. 이들을 향한 사회적 관심이 지금보다 열악했던 때에 자립을 시작했던 탓도 컸다.

이씨에게 노래가 특별했던 건 초등학교 음악 시간 때부터다. 그는 담임 선생님에게 무작위로 뽑혀 노래를 부르게 됐는데, 반 친구들이 노래를 듣고 감탄하며 환호했다고 한다. 이씨는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처음 들어보는 칭찬이었다”고 했다. 이후 이씨는 등하교 시간을 이용해 노래했다. 홀로 걸으며 노래하는 그때가 유일하게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나간 자립준비청년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까지 하면서 이씨에게 길이 조금씩 열렸다. 같은 꿈을 꾸는 친구들을 처음 만났고, 미국에서 노숙자 등 소외된 계층을 위해 함께 공연할 기회도 얻었다. 난생처음 보는 푸른 눈의 외국인이 “목소리가 아름답다”며 자신을 안아줬다고 한다.

이씨는 “음악을 하겠다”고 결심했고, 보컬 실용음악과 대학까지 진학했다. 대학으로부터 일부 학자금 장학금을 받았고, 부족한 부분은 대출로 해결했다. 그는 “칭찬이 나를 키웠다”며 웃었다.

박선영씨는 서울시립대 공업디자인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늦깎이 대학생이다. 그는 특성화고 회계금융경영과를 나와 대기업 보험사를 5년 넘게 다니다가 꿈을 향해 나섰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 자립준비청년 미술대회가 열리면 항상 참가했던 그였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취업의 길을 가고 있었다”고 말했다.

박씨가 다시 꿈꿀 수 있었던 건 경제적 자립 덕분이었다. 그는 “자립하고 나선 돈을 모아 매년 해외여행을 가면서 자유를 느꼈다”며 “인도 여행을 하면서 열악한 환경에 놀랐다. 이런 모습들이 어떻게 개선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자신의 업무 환경부터 회사 애플리케이션까지 환경 개선을 위한 디자인에 즐거움을 느꼈다고 했다.

박씨가 용기를 낸 건 코로나19로 회사가 희망퇴직자를 받으면서다. 그는 고민 끝에 안정적 직장을 포기하고 24살 늦깎이 입시준비생이 됐다. 미술 입시학원을 다니면서 처음 정식으로 미술을 배운 그는 입시 대학진학에 실패하면 죽겠다는 각오를 했다고 한다. 박씨는 단 8개월 만에 지금 다니는 대학에 수석 입학했다.

지원 절실한 예술 꿈꾸는 청년들

이씨와 박씨는 또래들과 다른 출발선에서 시작했다. 이들 같은 자립준비청년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정규 이론 교육이었다. 보육원 시절 박씨는 홀로 그림을 그리고, 이씨는 혼자 노래를 불렀다. 이들은 경연대회에 나가 입상할 정도로 재능을 보였지만, 실력을 쌓을 수 있는 교육 기회는 없었다. 또 빠른 취업을 위해 특성화고 진학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아직도 대부분 시간을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씨는 대학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며 대리운전 배달 등을 한다. 이씨는 전북 전주에서 보컬 레슨을 했지만, 서울에 올라온 뒤에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다.

이들은 “최근 자립준비청년이 지원받을 기회가 많이 늘어난 것을 체감하고 있다”면서도 “나이가 많아서 지원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아쉬워했다. 자립수당이 생기기 이전인 2016년에 자립한 박씨는 “지원 공고를 알려주는 카페나 단체카톡방이 생겨나고 있어 큰 도움을 받는다”면서도 “저는 10개 중 6개에 지원조차 할 수 없다. 대부분 만 24세 이하로 한정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저같이 늦게 대학을 간 친구들은 지원이 절실한데 지원 기회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둘을 포함한 12명의 자립준비청년은 최근 서울시아동자립지원사업단 예체능계열 꿈 지원사업 ‘비비드’에 선발돼 원하는 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었다. 성악가 조수미씨가 “예체능 계열 꿈을 가진 자립준비청년을 위해 써달라”며 1억5000만원을 기부하면서다.

박씨는 목공 교육을 받게 됐다. 가구 디자인을 유독 좋아하는 박씨는 자신만의 디자인으로 가구를 직접 만들어보고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판매까지 도전해 보려고 한다. 이씨는 기타를 뒤늦게 정식으로 배우게 됐다.

박씨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을 통해 해외 봉사를 하러 곧 캄보디아로 떠난다. 저소득층 국가의 학교 등에서 환경을 직접 개선하는 일을 기획하고 참여할 예정이다. 이씨는 곡을 계속 쓰면서 실력을 키워 2025년에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 입상하는 것이 꿈이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자립준비청년들의 꿈이 취업만은 아니다. 우리 같은 친구들에게도 꿈꿀 기회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