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와 정책 부서를 분리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직 개편 이후 ‘신분 세탁’을 꿈꾸는 직원들이 늘어나는 분위기다. 신분 세탁은 정책 부서 등에 근무하며 기업과의 연관성을 낮추는 작업을 말한다. 공정위 퇴직 후 기업 재취업을 위한 사전 조치인 셈이다.
공정위는 지난 4월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이전에는 각 과에서 조사와 정책을 모두 담당했지만, 개편 이후 조사와 정책 부서가 명확히 분리됐다.
조직 개편 이후 조사보다는 정책 부서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조사 부서는 기업 관련 업무가 많아 퇴직 후 재취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공직자윤리법상 4급 이상 퇴직자는 퇴직 전 5년간 소속됐던 기관·부서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에 퇴직 후 3년간 취업이 제한된다. 조사 부서에서 특정 기업 관련 사건을 맡게 되면 사실상 해당 기업 취업이 막히는 셈이다.
특히 대기업 전반을 들여다보는 기업집단감시국 기업집단관리과의 경우 이전보다 선호도가 낮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집단관리과의 핵심업무 중 하나는 대기업집단(재벌) 지정이다. 어느 기업이 재벌인지 판단해야 하는 만큼 거의 모든 대기업과 업무 연관성을 갖게 돼 퇴직 후 취업제한 대상 기업이 많아진다.
대신 국제협력과 등 직접 기업과 소통할 일이 많지 않은 부서가 ‘신분 세탁자’에 인기라고 한다. 국제협력과는 해외 경쟁 당국과의 교류가 주 업무인 만큼 기업과의 업무 연관성이 높지 않다. 유학을 선택해 업무 연관성을 낮추는 경우도 있다. 한 공정위 직원은 9일 “인사 적체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퇴직 후를 계획하는 걸 비난할 수는 없지만 씁쓸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조직의 전문성 제고 등 원칙 하에 조직개편 이후에도 일관된 기준을 적용해 직원 전보를 실시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세종=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