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방선기 (9) 적성 찾아 신학 공부… 미국 신학교 유학길 열려

입력 2023-08-11 03:10
미국 미시시피주 잭슨에 있는 리폼드신학교 교정에서 포즈를 취한 방선기 일터개발원 이사장. 방 이사장은 1980년부터 4년간 리폼드신학교에서 유학했다.

국방과학연구소에서의 직장생활은 만족스러웠지만 마음 한편엔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란 불안감이 있었다. 일할수록 엔지니어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확신이 굳어졌다. 주변의 칭찬과는 별개로 재미없는 일을 하자니 능률도 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내 실력이 동료나 선후배보다 뒤처진다는 게 느껴졌다. 탁월한 이들은 현장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연락을 받는 즉시 문제의 핵심을 파악해 대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나는 문제 자체도 파악하기 버거운 경우가 많았다. 뛰어난 이들 가운데서 무능력한 모습을 보이자니 점점 자괴감이 들었다.

흥미도 능력도 없는 분야에 계속 있는 건 인생의 낭비란 생각에 내가 하고 싶고, 잘하는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대학 시절 성경을 공부하고 가르친 일이 떠올랐다. 신학교에서 기독교 교육을 배운다면 성경을 잘 가르칠 수 있으리란 판단이 들었다. 가족 부양을 위해 직장을 다녀야 했으므로 퇴근 후 다닐 야간 신학교를 찾았지만 쉽사리 길이 열리지 않았다.

처음 신학을 공부하려 했을 땐 유학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나고 보니 하나님은 이전엔 알지도 못했던 미국 남부의 신학교로 나를 이끄셨다. 미국 신학교에 다닌 외사촌 형이 보내온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책자를 집에서 우연히 본 게 계기였다. 미국 신학교에 그저 궁금했던 몇 가지를 적어 편지를 썼는데 아주 친절한 답장이 돌아왔다. 이때만 해도 한국은 세계 수많은 개발도상국 중 하나였다. 가난한 청년의 질문을 외면치 않는 미국 신학교에 관심이 갔다. 이후 미국 신학교 10곳에 ‘기독교 교육을 배우고자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그러자 커버넌트신학교에서 ‘교육학에 관심 있으면 리폼드신학교를 추천한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용기가 생긴 나는 리폼드신학교에도 편지를 보냈다. 몇몇 신학교에서 긍정적인 답변이 왔는데 이중 휘튼신학교와 리폼드신학교가 마음에 들었다. 신학교지만 교육학이 개설된 대학이어서다. 나는 넉넉한 장학금을 제시한 리폼드신학교로 진학하기로 했다. ‘짧더라도 국내 신학교를 경험해보라’는 교회 배려로 총신대에서 한 학기 공부하며 전도사로 활동할 기회도 얻었다.

미국 유학을 앞두자 어머니는 가장 아쉬움을 표했다. 오랜 시간 가장 역할을 한 아들을 평소 의지해 온 터였다. 그렇지만 동생들도 대학생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정 경제에 일조하고 있어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1980년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와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퇴직금 절반은 어머니께 드렸기에 우리 부부는 빈털터리나 다름없었다. 일을 병행하며 고되게 학교를 다녔음에도 공부가 재미있어 기독교 교육이 적성에 잘 맞는 분야임을 깨달았다.

당시도 그랬지만 지금도 나는 엔지니어보다 목회자가 더 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공학보다 기독교 교육 분야를 더 좋아하고 잘했을 뿐이다. 기독교인이라면 분야에 상관없이 자신이 일하는 현장에서 영성을 키워가고 하나님과 교류할 수 있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