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전 아버지가 낙상사고로 사지마비 장애인이 된 이후, 이 고난의 뜻을 알려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사필귀정이나 인과응보의 시각에서 보면 희생하고 베풀고 살아온 우리 부모님 노년의 고난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러다 만난 책이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입니다. 신경정신과 의사였던 저자가 강제수용소에서 지내며 극심한 시련 속 인간의 모습에 대해 관찰한 바를 정리한 글입니다. 저자는 수용소의 삶이 얼마나 참혹했던 가에 집중하기보다는 수용소의 극심한 고난 속에서 인간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그리고 그곳에서 끝까지 살아남게 만든 힘은 무엇인지에 대해 담담하게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책은 강제수용소에 갇혀서도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거나 마지막 남은 빵을 나누어 주었던 품위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피할 수 없는 극심한 고난의 바다에서 건져 올릴 수 있는 고난의 의미 및 인간 존엄성의 승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 저는 원망 두려움 피해의식 그리고 자기연민에 갇힌 채 가족에게 닥쳐온 시련 자체만을 애도하는 데 온 신경을 쏟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시선을 확장해 저희 부모님들이 시련의 상황에서 선택한 삶의 모습을 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그분들께서 변함없이 보여주시는 자식들에 대한 사랑과 책임 의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수용소의 환경에서도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보여주었던 인간 존엄의 모습을 보여주고 계셨던 거지요. 그 순간 저를 사로잡고 있던 패배자의 우울감은 사라지고 무한한 자긍심과 감사함이 솟아남을 느꼈습니다. 책이 가족에게 닥친 시련에 대한 저의 생각을 180도 바꿔주고 저를 치유해주었던 것이지요.
저자는 또 수용소의 극한 상황에서 버틸 힘을 준 것은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추억이었다고 고백합니다. 혹독한 추위 속 동상이 걸린 발을 옮겨가며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순간조차 아내와 대화를 나누는 상상을 하며 힘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사랑이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버틸 힘을 준다니, 저희 부모님께도 자식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특별한 느낌을 선물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나를 치유한 책이 부모님도 치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 책을 읽어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책 읽기의 여정이 글로 모여 얼마 전 책으로 출간됐습니다.
요즘 어머니는 주변의 긍정적인 반응과 위로에 힘을 얻습니다. 책을 읽은 어머니 친구분께서 손자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할머니라고 이야기하는 대목을 인용하시며 ‘너의 인생은 정말 성공한 인생이구나’라고 하셨답니다. 많은 분께서 어머님 이야기를 통해 큰 위로를 얻는다며 감사의 인사를 하시고요.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들에게 오늘을 버틸 힘을 주고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북돋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부모님의 고난은 어느 정도 의미를 갖게 될 듯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그의 뜻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안에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로마서 8장 28절을 절절히 경험하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