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가 8일 확보한 최근 1년간 ‘묻지마 범죄’ 피고인 27명의 판결문을 보면 일부 가해자는 경제·사회적으로 소외된 자신의 신변을 비관하거나 불행한 처지가 사회 탓이라고 생각해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묻지마 범죄 대부분은 수사·재판을 통해서도 범행 동기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다.
신변 비관은 최근 연이어 발생한 묻지마 범죄 피의자 중 일부가 밝힌 범행 동기와도 유사하다. 지난달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흉기 난동을 벌인 조선(33)은 “나는 불행하게 사는데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고 분노에 가득 차 범행했다”고 진술했었다.
실제 사회에 불만을 품거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묻지마 범행을 벌인 경우는 4건이었다. F씨는 지난해 4월 서울 서대문구에서 지인들과 술자리를 한 후 귀가하던 중 직장을 잃고 파산선고를 받은 자신의 처지에 분노에 휩싸였다. F씨는 길을 가던 40대 여성 G씨에게 분노를 쏟아내기로 마음먹고 G씨가 사는 아파트의 승강기에 따라 탔다. 그는 G씨를 끌어내리려는 과정에서 G씨가 저항하다 넘어지자 배를 걷어차는 등 폭행했다.
판결문에 범행 동기가 언급되지 않거나 특별한 이유 없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적시된 경우도 17건이나 됐다. 상대가 쳐다본다는 등의 사소한 이유로 ‘화가 나서’ 폭행을 한 경우는 10건이었다. 한 명이 다수의 범죄를 저지른 경우도 많았다. H씨는 지하철에서 쳐다본다는 이유로 70대 남성을, 식당에서 ‘다음에 오세요’라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50대 여성 등을 폭행했다.
전문가들은 묻지마 범죄에도 끈질기게 동기를 묻고, 원인을 밝혀내야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구체적 범죄 원인이 밝혀져야 교화와 재범 예방 대책 수립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해자가 느낀 사회·구조적 모순 등 근본적인 동기를 찾아야 한다”며 “수사에서 밝히지 못했다면 교도소 수형 평가에서라도 원인을 찾아 바로잡아야 재범을 막고 실효적 대책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