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형병원의 무분별한 병상 증설을 막기 위해 ‘사전 승인제’를 추진한다. 병상 과잉이 불필요한 장기입원을 낳고, 결국 국민 의료비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판단에서다.
보건복지부는 병상 수급 분석을 토대로 공급제한·조정·가능 등 3개 지역으로 분류한 뒤 가능 지역을 제외하고 병상 공급을 제한하는 내용의 병상수급 기본시책을 8일 발표했다.
우선 병상 증설 시 승인 절차를 까다롭게 두기로 했다. 100병상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종합병원이 병상을 증설할 때는 시·도 의료기관 개설위원회의 심의와 승인을 받아야 한다.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과 수도권 상급종합병원 분원의 경우 위원회 승인에 더해 복지부 장관의 사전 승인까지 받아야 한다. 정부는 의료법 개정을 통해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다.
당장 수도권에 분원을 설치하려는 대학병원들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병원 완공 후 허가를 받는 방식이지만, 의료법이 개정되면 부지 매입 전 단계부터 사전 심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수도권에서만 9개 대학병원이 11개 분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복지부는 이미 건축허가를 받은 병원에 대해서는 일괄 소급 적용이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오상윤 복지부 의료정책과장은 “건축허가를 이미 받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공급제한 지역이더라도 신뢰 이익 보호 차원에서 개설 허가를 불허할 수는 없다”며 “그렇지 않고 관리계획이 시행되거나 의료법 개정 이후 (분원 설치가) 막 시작 단계에 있다면 당연히 적용받게 된다”고 말했다.
병상 수뿐만 아니라 품질 관리에도 나선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의료기관의 신규 개설 절차를 강화하고 종합병원에는 개설 허가 신청 시 의료인력 수급 계획 제출도 의무화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간호인력을 많이 배치할수록 재정지원을 많이 받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복지부는 병상 가동률이 떨어지면 오히려 병원이 병상을 더 많이 지어 환자를 오래 입원시키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병상이 곧 수익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공급이 수요를 창출해왔다는 것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2027년에는 10만5000병상이 남아돌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온다.
박 차관은 “병상 과잉공급 현상이 지속되면 보건의료체계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며 “병상을 체계적으로 관리함과 동시에 무분별한 병상 증가를 방지하기 위해 의료법 개정 등을 신속하게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