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한국의 매력도 순위를 세계 63개국 중 49위로 매긴 것은 물가부터 과세, 이산화탄소 농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부지표에 대한 국내 기업인의 반응을 반영한 결과다. 한국은 인재들의 경제활동은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고, 결국 외국인의 한국행 개연성은 국제사회에서 낮게 평가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저출생·고령화가 맞물린 상황에서 고급인력을 포함한 외국인 유치를 목표로 한다면 외부에 드러난 한국의 약점부터 해결할 때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물가 55위, 동기부여 52위
8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IMD는 한국에 대해 ‘소비자물가지수’를 63개국 중 55위, ‘노동 동기부여’를 52위, ‘미세먼지 노출’을 53위로 분류했다. ‘정의 실현’은 42위, ‘해외 고급인력 유입’은 49위에 머물렀다. 이 지표들은 세계인재경쟁력보고서의 ‘매력도’ 산출에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11가지 지표 중 일부다. 외국 인재가 바라보는 한국은 ‘정착하고 싶은 나라’로 꼽히긴 어려울 것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국민일보는 매력도뿐 아니라 투자·개발, 준비성 등 IMD의 인재경쟁력보고서 작성에 적용되는 모든 항목별 순위 로데이터를 입수했다. 총 388개 항목인 이 자료에서는 IMD가 보고서에서 공개하지 않았던 한국의 현주소가 드러난다. 388개 항목 가운데 50위 이하 순위가 매겨진 항목은 48개(12.4%)였다. 대부분은 기업인의 경제활동에 있어 정부 규제와 연관된 항목이었는데, 관료주의(57위) 관세장벽(58위) 사법·규제체계(59위) 등에서 순위가 낮았다. 이 항목들이 하위권이라는 것은, 예컨대 “당신 국가의 관료주의가 경영활동을 저해하느냐”고 물었을 때 “아니다”로 답변한 비중이 세계적으로 낮았다는 의미다.
한국은 직장 내 모습이 매력적으로 그려지지 못하고 있다. 여성 임원 비율(55위) 주주권리(57위) 정부보조금(59위) 관리직에 대한 신뢰도(59위) 기업 이사회(61위) 유능한 고위인사(55위) 등에서 한국의 순위는 하위권으로 분류됐다. 사업 재배치에 대한 위협(63위)은 아예 조사 대상국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다. 일상생활에서의 질도 높게 인식되지 않았다. 가처분소득(54위) 휴대전화 비용(54위) 이산화탄소 배출(57위) 등이 그 예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임금 수준이 높은 외국인일수록 우리나라에서 더 빨리 빠져나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이들이 해외 인재의 유입을 비관한 응답 결과에는 자기보고적 설문이라는 한계가 있다. 각국의 설문 응답은 동일선상에서 비교된 것이 아니다. 경제활동에 유리한 환경이 아니라고 기업 입장에서 평가한 시각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윤상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팀장은 “응답자들이 주관적으로 느낀 바를 점수화한 결과인 만큼 객관적 현실과 차이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IMD의 결론대로라면 한국은 레바논이나 사우디아라비아보다 관료주의 폐해가 심하다는 의미인데,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지적이다. 예컨대 과세의 경우 IMD는 한국 경제가 과도한 누진과세 등의 영향으로 조세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평가하지만 오히려 한국 역대 정부는 법인세를 꾸준히 인하해 왔다. 윤 팀장은 “실제로는 한국이 타국에 비해 나은 면이 있더라도 응답자들이 갖는 기대감에 미치지 못하면 그 점이 반영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주 환경을 만들라
다만 전문가들은 한국의 정주 환경이 낮게 평가되는 현실 확인에 교훈이 있다고 말한다. 유일호 대한상공회의소 고용노동정책팀장은 “고급인력이 한국에 들어오면 결국 그들 가족이 함께 와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그들을 위한 생활권이 형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 팀장은 “주거와 자녀교육, 의료지원 등 문제에 있어서 어려움 없이 정착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며 “현 정부가 낮은 수준부터 높은 수준까지의 인력을 어떻게 들여오고 관리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교육수준이 높은 한국의 노동시장에서는 저임금·저숙련 노동력 부족 현상이 늘상 문제였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미래의 신산업 발전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고급인력 유치 방안이 과제가 될 전망이다. 새로운 인구정책은 ‘현안 때우기’보다 ‘고급 브레인’ 유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구모니터링평가센터장은 “고효율 사회로 이동해야 한다는 대전제가 있다”며 “지금부터라도 이민정책과 인력정책이 구분돼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외국인의 편의를 최대한 지원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철희 교수는 “영미권 학교에서는 외국인 학생을 따로 불러 영어 공부를 시키는데, 이것을 우리나라 학교에서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외국인이 자주 맞닥뜨리는 한국의 각종 행정절차는 여전히 문턱이 높다고 한다. 외국인 대학교수들이 연구비를 신청할 때 서류를 한국어로 적도록 요구받고 어려워한 경우도 있더라고 이 교수는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