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이제 시작” 잇단 외톨이 테러, 중장기대책 시급

입력 2023-08-08 00:02
지난 6일 오전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경찰특공대원들이 순찰을 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불특정 다수에게 흉기를 휘두른 살인사건과 이를 모방하는 살인예고가 이어지면서 한국판 ‘외톨이 테러’에 대한 중장기 대책이 시급하다는 주문이 나온다. 엄정한 공권력 집행뿐 아니라 범죄 예방과 사회적 지원 등 근원적 해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성남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의 가해자 최원종(22)은 2주 전 발생했던 ‘신림역 흉기난동’ 사건의 범인 조선(33)을 모방했다. 흉기를 마트에서 구입했고, 다중밀집지역을 범행장소로 정한 것 등 두 사건은 여러 면에서 연결돼 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7일 “서현역 사건은 ‘신림역 범죄’ 스타일을 모방한 것”이라고 했다.

최씨와 조씨 모두 ‘왜곡된 분노’가 흉기를 든 동기였다. 최씨는 경찰에 붙잡힌 뒤 “특정 집단이 나를 괴롭히고 죽이려 한다”고 진술했다. 조씨 역시 “나는 불행하게 사는데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흉기난동 범인들은 공통적으로 자기감정에 매몰된 ‘사회적 외톨이’였다. 배상훈 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최씨나 조씨는 자기가 처한 상황에 대한 해법을 개인적 망상을 키우는 식으로 찾았다”며 “그 망상 속에서 찾은 답이 범죄”라고 분석했다. 배 교수는 “이들은 ‘공공장소에서 사람을 죽이면 나를 주목할 것’이라는 답을 내린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유사 사건이 반복될 우려가 크다고 본다. 미국과 일본 등에서 빈발한 ‘외로운 늑대’ 테러가 한국에서도 시작됐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경찰에 따르면 두 사건 전후로 올라온 살인예고 글만 194건(7일 오후 6시 기준)에 달했다. 경찰은 이들 중 65명을 검거하고 3명을 구속했다. 검거된 피의자 가운데 34명은 10대로 집계됐다. 나머지는 20, 30대 청년층이었다. 단순 장난인 글도 있었지만, 사회를 향한 누적된 분노를 드러낸 협박이라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수사 당국의 대응은 ‘엄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날 검찰에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위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경찰 등의 물리력 행사에 정당행위·정당방위를 적극 검토해 적용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경찰은 서현역 사건 이후 4~6일 사흘간 다중밀집지역에서 거동 수상자 442명을 검문 검색해 흉기 소지자 등 14명을 협박 등 혐의로 입건했다.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인 범죄 예방 대책도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웅혁 교수는 “치안 환경이 바뀌었는데 정부 대책은 옛날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다”며 “사전에 범죄를 막아달라는 건데 가석방 없는 종신형 등의 대책을 내놓는다는 건 쉬운 것만 하려는 모습이다. 정부기관의 총체적 대응을 방해하는 요소”라고 지적했다.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의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조현병 환자들만 관리하기에도 급급한 상태”라며 “핵심은 사회적 처방이다. 지역 단위에서 그 사람의 일상생활과 정신질환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고 지원해 주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신영 백재연 기자 spiri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