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역 흉기난동 등 살인사건에서 ‘심신미약’은 피고인의 법정 전략으로 흔히 활용되지만 법원은 최근 심신미약 감경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있다. 2018년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등을 계기로 심신미약 감경에 대해 비판 여론이 일자 ‘무조건 감경’에서 ‘재판관 재량에 따른 감경’으로 법이 바뀌면서부터다. 서현역 사건 피의자 최원종(22) 역시 법원에서 심신미약 상태의 범행이 인정될 것으로 보이지만 형량을 정하는 데 중대 감경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적다는 게 법조계 관측이다.
7일 국민일보가 확보한 판결문에 따르면 20대 정신질환자 A씨는 2021년 5월 택시 뒷좌석에서 60대 기사를 수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애초 채팅 앱으로 알게 된 여성을 살해하려 흉기를 구매해 택시를 탔다가 계획이 무산될 것 같다는 생각에 화가 나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약물 부작용을 이유로 치료를 중단한 정신질환자였다.
A씨 측은 조현병을 주장하며 감경 전략을 썼고, 1심도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 범행에서 심신미약이라는 사정은 양형에서 참작하는 외에는 형을 감경할 만한 정도에 이르지 않는다고 판단되므로 심신미약 감경은 따로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2심도 “원심이 심신미약을 이유로 형을 감경하지 않은 것은 위법하지 않다”며 징역 30년은 부당하다는 A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형법 제10조2항은 심신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감경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2018년 12월 전에는 ‘감경한다’고 정해 필수적 감경 사유였지만 법이 개정되면서 재판장 재량에 맡겼다.
시각장애인 80대 노모를 홀로 돌보다 폭행해 살해한 조현병 환자 B씨 사건에서도 법원은 심신미약 감경 없이 형을 정했다. 1심은 B씨가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B씨는 ‘(범행 후) 피해자에게 미안한 마음에서 이불을 덮어줬다’고 진술하는 등 자기 행위의 위법성을 인식한 채 범행한 것으로 보이고, 자기 통제능력이 완전히 결여됐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며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판결은 지난 6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서현역 사건 범인 최씨도 고교 자퇴 후 대인기피증 등으로 5년간 정신과 치료를 받다가 2020년 조현성 인격장애 진단을 받았는데, 그 후 스스로 치료를 중단했다. 심신미약을 주장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형을 감경받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 부장판사는 “재판부는 최씨가 흉기를 들고 집을 나선 상황부터 판단을 시작할 것”이라며 “정신질환자로서 치밀하게 계획을 짠 것은 아닐 수 있지만 적어도 그 행위의 의미가 무엇인지 인식하고 있었다고 봐야 하고, 마음의 분노를 살인으로 풀려는 범행 동기가 명확해 중형이 선고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