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최모(42)씨는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다음 날인 지난 4일 출근길 버스에 올랐다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최씨가 휴대전화에 집중하던 사이 한 남성이 옆에 선 것이다. 버스에 빈 좌석은 많았다. 한 정거장 만에 내린 최씨는 그다음 날부터 남편과 함께 출퇴근하기 시작했다.
잇따른 흉기난동과 살인예고에 불안을 호소하는 시민이 늘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묻지마 범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이 자칫 국민적 트라우마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서울 강남 일대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모(35)씨는 집을 나설 때마다 공포를 느낀다고 했다. 김씨는 “강남역이 가까운데도 이번 주말 지하철 대신 자차를 이용했다”며 “볼일을 마치고 상가 계단을 내려오는데 한 남자가 앉아 있어서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말했다.
불안을 느끼는 건 남성도 마찬가지다. 직장인 이모(34)씨는 “밤 10시쯤 귀가하는데 키 큰 중년 남성이 빤히 보고 있었다”며 “평소보다 더 크게 놀라게 되더라. 자세히 보니 그냥 취객이었다”고 말했다. 직장인 전모(28)씨도 “주말에 대형복합쇼핑몰을 찾았는데 경찰이 있기에 무서웠다”며 “(순찰 강화) 안내방송을 듣기 전까지는 선글라스나 마스크를 쓴 사람을 피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 지하철 9호선에서 지난 6일 벌어진 소동도 ‘집단 트라우마’를 보여준 사례다. 이날 오후 8시35분쯤 ‘열차 안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 ‘사람들이 뛰어다니고 있다’ 등의 신고가 접수됐다. BTS 콘서트를 보고 귀가하던 팬들이 멤버 슈가의 영상을 보고 환호한 것이었지만 소방과 경찰까지 출동했다. 신논현역에서 열차가 정차하자 급히 하차하려던 승객들은 타박상을 입었다.
오인 신고로 애꿎은 중학생이 진압당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 5일 의정부경찰서에 ‘검정 후드티를 입은 남자가 흉기를 들고 다닌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이 중학생 A군을 범인으로 오인해 진압하는 과정에서 A군 신체 곳곳에 피멍이 들었다. 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적 불안감을 해소하되 과도한 의욕이 앞선 법 집행으로 인한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사과했다.
전문가들은 장기간의 코로나19를 겪으며 기저불안이 높아진 상태에서 무차별 범죄가 이어진 탓에 시민들이 집단적 패닉에 빠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그동안 불안이 쌓여왔고, 범행 장소가 지극히 일상적인 곳들이어서 미리 불안함을 느끼는 ‘예기불안’ 심리가 만연해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임 교수는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상황을 객관화해 스스로 안정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경찰은 7일 서현역 흉기난동 피의자 최원종(22)의 신상을 공개했다. 경기남부경찰청 신상공개위원회는 “여러 사람을 살해하려 한 사실에 비춰 범행의 잔인성과 피해의 중대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가현 백재연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