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님 저도 한국에서 2년 일하면서 신앙생활 했었어요. 늘 선교사님과 대화하고 싶었는데…. 그런데 혹시 제 부탁 좀 들어주실 수 있으세요?”
동남아시아의 한 국가에 막 부임한 A선교사에게 현지인 B씨가 접근한 건 지난달 초순이었다. B씨의 부탁은 “한국 지인에게 보낸 소포가 잘못 배송돼 우체국에 있는데 대신 찾아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제 지인이 낮에 일해서 우체국 근무시간을 도저히 맞출 수 없어 부득이 부탁드린다”며 거듭 호소했다고 한다. 현지인과 사귀어서 나쁠 게 없다고 생각한 선교사는 흔쾌히 허락한 뒤 우체국 근처에 있는 충남 아산의 한 교회 부목사인 지인 C씨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C목사도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지난달 12일 우체국에서 소포를 찾을 때까지는 이렇게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우체국에서 소포를 받아드는 순간 건장한 체격의 남성들이 일제히 C목사에게 달려들었다. “마약 밀반입 혐의로 긴급 체포한다”는 말을 외친 이들은 청주지방검찰청 소속 수사관들이었다. 이들은 세관 통관 때부터 국내 공급책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이 마약을 추적해 왔다.
현지인의 부탁에서 시작해 선교사를 거쳐 한국의 목사에게까지 전해진 소포의 정체는 ‘야바’라는 마약이었다. 야바는 1970년대부터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유통되는 합성 마약으로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도 퍼지고 있다.
당황한 C목사는 어렵게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에야 결백을 증명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7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목사임을 밝혔고 지인 선교사 부탁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교회 홈페이지에 올라가 있는 내 사진과 주민등록증 등을 보여주며 결백을 호소했다”고 전했다.
그런 뒤 국내 공급책을 붙잡기 위한 공조가 시작됐다.
수사관들은 C목사를 통해 A선교사에게 “소포 잘 받았다. 수요예배 때문에 직접 전달 못 하니 교회 로비에 두겠다. 와서 가지고 가라고 전해 달라”는 내용의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약속한 시간에 교회에 온 태국인 불법체류자 D씨는 현장에서 체포됐고 나머지 일당도 검거됐다. 이날 D씨가 받으려던 마약은 야바 1만6117정으로 8억원 상당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마약 배달에 종교인의 선의를 악용한 사례로 꼽힌다. 선교계에서는 현지인과 선교사의 관계를 고려할 때 재발 우려가 크다고 보고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무엇보다 선교계에 만연한 ‘지인 짐 품앗이’를 주의하라고 요청했다. 아무리 선의더라도 타인의 짐을 들어주다 마약운반 혐의로 체포되면 어느 국가에서든 중형이 불가피하다.
강대흥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사무총장은 “선교사들이 품앗이 개념으로 서로의 짐을 해외로 갈 때 대신 들어다 주는 경우가 많다. 경각심을 갖고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창일 김아영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