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역·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이후 ‘살인예고’ 글이 감염병처럼 퍼져 나가자 수사당국이 엄정 대응 방침을 밝혔다. 검경은 유행처럼 번지는 살인예고 게시글에 대해 “온라인상 살인예비 위협 글 게시는 단순 장난으로 볼 수 없다”며 구속수사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 2일부터 6일 오후 6시까지 전국에서 모두 54명의 살인예고 글 작성자를 검거했다고 밝혔다. 5일 낮 기준 검거 인원은 18명이었다. 약 하루 사이 36명이나 더 붙잡힌 것이다. 서울 용산·왕십리, 인천 송도·계양, 대구·강원·충청 등 전국 각지에서 협박 글을 올린 이들이 검거됐다.
부산 동래경찰서는 이날 부산 서면역에서 흉기 난동을 예고하는 글을 자신의 SNS에 올린 20대 해군 A일병을 검거해 헌병대에 인계했다. A일병은 검거 당시 “술에 취해 장난으로 게시물을 올린 것”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4일 ‘경찰관을 찔러 죽이겠다’는 글을 SNS에 올리고 같은 날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흉기를 소지한 채 배회한 20대 남성 허모씨는 이날 구속됐다.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을 전후로 온라인상에서는 살인예고 게시글이 쏟아졌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이후 사흘간 접수된 살인예고 건만 28건이라고 밝혔다. 경기남부청은 이들 중 13명을 검거했다.
검거된 이들 다수는 미성년자였다. 죄의식 없이 대부분 장난삼아 또는 영웅심리로 살인예고 글을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경기 하남 미사역 살인예고 글을 올린 B군(14)은 조사에서 “사람들이 많이 놀라니까 심심해서 장난으로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조사됐다. 강원 원주역 칼부림을 예고한 C군(17)도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으려고 그랬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파악됐다.
수사당국은 시민의 공포감이 가중되고 있는 만큼 엄정 대응을 예고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범행 동기, 배경, 수단과 방법을 철저히 살펴 구속수사를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검찰은 관련 범죄에 살인예비, 위계공무집행방해 등 가능한 형사법령을 적극 적용하고 구속수사를 검토하기로 했다. 우종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 역시 살인예고 글 관련 긴급 화상회의를 개최하고 “수사 과정에서 구체적인 범죄 실행 의사가 확인되는 경우에는 구속수사를 적극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지난달 24일 인터넷 게임 채팅방에서 한 여성을 살해하겠다고 예고하고 흉기 사진을 찍어올린 D씨(33)에게 살인예비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구속송치했다고 밝혔다. 신림역 흉기난동 사건 이후 살인예고가 확산하는 상황에서 처음으로 살인예비 혐의로 적용한 사례다.
검경은 살인예고 협박과 흉기난동 범죄에 대한 심각성을 공유하고 협조하기로 했다. 이 총장과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날 오전 전화 통화를 통해 국민 불안이 큰 만큼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현행법상 단순 예고 글 작성 행위만으론 강력 처벌이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판례상 살인예비 혐의는 살인의 실현을 위한 준비행위가 있어야 하고, 단순히 범행 의사 또는 계획만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 대검찰청은 이에 ‘공중 협박 행위’를 테러 차원에서 가중 처벌하는 법령 개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법무부에 입법 요청할 계획이다.
이가현 이형민 기자, 인천=김민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