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이렇게 무서운 세상이 될 줄은 몰랐다.”
6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만난 학부모 김양주(51)씨는 흉기 살인예고에 걱정을 감추지 못하며 이렇게 말했다. 성남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다음 날인 지난 4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6일 낮 12시 시대인재 학원 재수종합반 학생 전원을 살해하겠다”는 글이 올라오면서 대치동 학원가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였다.
김씨는 고등학생 자녀를 학원에 데려다주기 위해 40분 거리를 차로 달려왔다고 했다. 김씨는 자녀가 학원에 들어간 것을 본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오전 시대인재 학원 근처 은마아파트 입구 사거리에는 무장한 경찰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이 지역엔 범행 예고 장소로 지목된 시대인재 말고도 수십 개의 학원이 밀집해 있어 경찰특공대원들이 수시로 학원가를 거닐며 주변을 경계했다. 학원 측에서 고용한 사설 경호원도 눈에 띄었다. 시대인재 측은 이번 범행 예고 직후 15명의 사설 경호원을 고용했다고 한다.
범행 예고 시간인 정오가 가까워지자 사거리는 학생과 학부모로 가득 찼다. 인파가 불어나자 경찰도 더욱 바빠졌다. 방패와 삼단봉으로 무장한 경찰은 가방을 메지 않은 학생, 성인 남성의 손 등을 유심히 살폈다. 사설 경호원들은 학원 출입문을 모두 닫은 채 학생이 올 때마다 한 명씩 들여보냈다. 학원 관계자나 학부모가 아닌 성인은 출입을 불허했다.
경계 강화에도 학생과 학부모는 불안에 떨었다. 점심 식사를 위해 학원을 나선 김모(19)양은 “엄마가 학원을 가기 전 무선 이어폰을 절대 착용하지 말고 주변을 잘 살피며 다니라고 당부했다”며 “(살인예고) 글을 직접 보진 못했고 소문만 들었는데도 걱정된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3학년 자녀를 둔 박모(53)씨는 자녀 대신 학원을 찾았다. 박씨는 “(아이에게) 학원에 가지 말고 온라인 강의를 들으라고 했다”며 “나만 이렇게 나와서 수업에 필요한 교재를 받아가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불안을 떨쳐내지 못한 학부모 신고로 경찰이 출동해 학원 내부를 살피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자녀 학원 하원을 위해 학원가에 들른 50대 임모씨는 주변 말소리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임씨는 “너무 불안한데 글을 올린 사람이 빨리 잡혔으면 좋겠다. 일상이 공포가 됐다”고 토로했다.
한편,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했던 서현역 AK플라자는 휴일에도 한산했다. 주말이면 각종 행사로 붐볐던 1층 중앙광장은 텅 비어 있었고, 무장한 경찰과 보안요원들이 쉼 없이 돌아다녔다. 시민들은 삼엄한 경계에 안심하면서도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했다. 이모(50)씨는 “주말이면 사람들로 발 디딜 틈도 없던 곳인데 평소 반도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대치동을 비롯해 지하철, 공항, 행사장, 쇼핑몰 등 전국 45개 지역에 경찰특공대 128명과 장갑차 11대를 배치했다.
김재환 백재연 기자 j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