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방선기 (6) 옥한흠 목사 주도로 대학부 창립… 제자훈련 방식 정착

입력 2023-08-08 03:00
옥한흠(앞줄 왼쪽) 목사가 성도교회 전도사 시절 서울 중구의 교회 마당에서 방선기(앞줄 가운데) 일터개발원 이사장 등 당시 대학부 청년들과 함께한 모습.

대학생 시절 유년부 전도사로 우리 교회에 부임한 분이 있었다. 대학부에 관심이 많던 그분은 어느 날 나를 불러 “함께 대학부를 시작하자”고 했다. 이 전도사가 바로 한국교회에서 제자훈련으로 유명한 고 옥한흠 목사다.

제자훈련에 대해선 숨겨진 일화가 하나 있다. 성도교회 대학부를 시작한 당시 옥 전도사는 전통적 방법대로 매주 예배를 인도했다. 그때 선교단체 훈련을 받은 나는 대학부 모임이 끝나면 몇몇 후배를 따로 모아 성경 모임을 했다. 그때는 교회 지도자가 선교단체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기에 옥 전도사께는 따로 알리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우리 모임이 발각됐다. 보통 지도자라면 허락 없이 성경 모임을 했다고 혼냈을 것이다. 하지만 옥 전도사는 완전히 다르게 반응했다.

“왜 너희만 성경 공부하니? 우리 같이 하자.” 나중에 알고 보니 옥 전도사는 기성 교회도 못 하는 걸 선교단체가 잘하는 걸 보고 안타깝게 여겨 이렇게 반응한 것이다. 이후 대학부 성경공부는 제자훈련 방식으로 완전히 바꿨다. 선교단체 방식을 대체로 살리되 대학부 실정에 맞게 조정했다. 선교단체 제자훈련 프로그램을 고쳐 지역교회에 이식한 셈인데 무리 없이 적용됐다. 여기엔 옥 전도사의 목회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 선교단체 훈련과 달리 그분은 학과 공부를 강조했다. 당시는 옥 전도사가 세속과 타협한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그분의 생각이 옳았다.

옥 전도사의 초기 제자들도 한국교회 제자훈련 정착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입시 공동체 생활을 했던 두 후배가 핵심이었다. 이와 관련해 재밌는 일화가 있다. 옥 전도사는 대학부 창립을 위해 교인 가정 중 대학생을 찾아내 이들을 창립 모임에 초대했다. 그날 나는 각종 과일을 준비해 옥 전도사가 초대한 이들을 기다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 명도 오지 않았다. 나도 실망했지만 그분의 심정은 더 힘들었을 것이다. 안 되겠다는 생각에 함께 살던 고3 후배들을 불러 과일을 함께 먹었다. 이때 왔던 후배들이 대학부의 주춧돌이 됐다. 입학 후 대학 친구들을 교회로 인도했기 때문이다. 한정국 선교사와 박성수 이랜드 회장 등 대학생 12명이 이렇게 성도교회로 모였다. 훗날 이들이 옥 전도사의 제자훈련 사역의 기둥이 됐다.

대학 생활 초기엔 선교단체와 교회 대학부 사역을 병행했지만 3학년이 되면서 대학부에만 전념했다. 제자훈련 1호였던 나는 후배를 양육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당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성도교회 대학부에는 고등부에서 바로 올라온 학생도 있었지만 외부에서 온 이들이 더 많았다. 이 두 집단 간 미묘한 갈등이 있었다. 외부에서 온 이들은 대부분이 명문대 학생이었다. 반면 고등부에서 온 학생은 재수생이거나 고등학교 졸업 후 곧장 직장에 간 이들이 꽤 됐다. 당시 대학생은 재학 중인 대학교 배지를 달았는데 이게 갈등을 조장한다고 봤다. 나는 대학생 후배들에게 교회에선 배지를 떼자고 했다. 별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 문제를 풀려고 애쓴 시도였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