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시대에는 교사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아주 각별했습니다. 일찍부터 자녀들에게 아버지와 교사를 적의 손에서 구해야 한다면 교사가 먼저라고 가르칠 정도였습니다. 아버지는 자식을 세상에 데려왔지만, 영원한 세계로 인도하는 것은 교사라는 믿음 덕분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문헌 열조어록(Sayings of Fathers)은 “스승을 두려워하되 하늘을 경외하듯이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사정이 이래서 교사가 지나가면 자리에서 모두 일어나는 것으로 예를 표하거나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회당에서 교사는 귀빈석에 앉았고, 잔치가 열리면 주인은 교사를 상석에 모시고 자랑거리로 삼았습니다.(마 23:6)
교사는 애정의 대상이었으나 남다른 자격을 요구받았습니다. 교사는 학문적 소양은 물론 도덕적 성품까지 갖춰야 했습니다. 교사는 성격이 차분해야 했고 품위를 훼손하는 어떤 행위도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담당하는 학생을 따로 편애하거나 위해를 가하지 못했습니다. 언제든지 친절하려고 노력하고 어린이를 낙심케 하면 교사 자격이 부족한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동시에 교사는 누구보다 부지런해야 했습니다.
성경 시대에도 체벌은 의견이 갈렸습니다. 교사들은 한 마디 말이 백 개의 매로 훈육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알았습니다.(잠 17:10) 그렇다고 훈육이 늘 나쁜 게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 13:24)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잠 22:15)
매를 들어야 할 때는 부드러운 가죽을 사용했습니다. 이 매 가죽은 로마에서 교사가 사용하는 악명 높은 채찍(scutica)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때문에 로마 학교에서처럼 매를 맞다 학생이 목숨을 잃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사실 매보다 더 강한 처벌이 있었습니다. 학생을 학교에서 내쫓는 것입니다. 교사는 이때 학생의 다리에 도장을 찍어 학교에서 쫓겨났다고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지금과 달리 예수님 당시 교사는 보수가 없었습니다. 교사를 꿈꾸면 랍비 사독의 발언을 경계로 삼았습니다. “영화로운 왕관이나 생계를 잇기 위한 도끼로 사용하지 말라.” 교사들은 생계를 위해 바울처럼 천막을 짓거나 목수, 방앗간 주인, 빵 굽는 사람, 대장장이, 샌들장수, 토기장이 일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행 18:3) 이 모두 사회적으로 높게 인정받는 일은 아니었지만, 부끄러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교사들의 노동윤리는 중세의 수도사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노동이 곧 기도였습니다(laborare est orare). 달리 생업이 없으면 자발적인 사례비나 성전구호금으로 생활했습니다. 가르치니 대접받는 것은 당연했습니다.(마 10:10)
교사들은 전반적으로 생활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목동 출신의 탁월한 율법 교사로 유명했던 랍비 아키바 부부는 덮을 이불이 없어 한겨울에 짚을 이불 삼아서 잠잤다는 기록이 있고, 2세기 무렵 랍비로 활약했던 예후다는 외투가 한 벌뿐이라 외출할 때마다 부부가 번갈아 입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교사들은 힘겨운 처지에도 실망하지 않고 줄곧 가르쳤습니다. 덕분에 지식이 소유의 전부였던 교사들은 1세기 로마제국과의 전쟁 이후 얌니야(야브네)를 중심으로 소멸 직전의 유대 민족을 되살리고 세습 귀족 대신 이스라엘의 중심 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