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세대에 본당 내준 이유요?… 말씀 제대로 먹여야죠”

입력 2023-08-07 03:05
박두진 목사가 지난 5월 경기도 분당우리교회 수요예배에 참석해 ‘꿈 너머 꿈 프로젝트’ 교회로 선정된 소감과 함께 말씀을 전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한 소년이 있었다. 시골에 살던 소년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이사를 왔다. 가족들과 밤 기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영등포였다. 역전에서 어묵 꼬치를 먹으며 마주한 영등포는 고향의 정취는 하나도 없이 음침함과 적막함이 가득했다. 시골을 떠나 도착한 영등포는 고향을 삼키는 어둠 같았다.

중학생이 된 소년은 여름 수련회에서 하나님을 만나 목회자가 되겠다고 서원했다. 소년은 자신의 서원대로 총신대 신대원을 졸업한 뒤 목회자가 됐다. 영등포와 가까운 지역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18년을 섬겼지만 영등포는 의도적으로 회피했다. 어린시절 뇌리에 박힌 영등포는 도심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자신을 떠올리게도 했기 때문이다.

이후 개척을 준비하며 지역을 놓고 뜨겁게 기도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은 그를 당황케 했다. 바로 자신이 그토록 회피했던 영등포였기 때문이다. 예수다솜교회 박두진(51) 목사 이야기다. 지난 3일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교회에서 만난 박 목사는 “이곳으로 이끄신 뜻이 있음을 믿고 순종함으로 즐겁게 사역하고 있다”고 말했다.

죽음의 선고 앞에 깨달은 복음의 가치

박 목사는 죽음의 선고 앞에서 복음의 가치를 깊이 깨닫고 팀 켈러 목사의 영향을 받아 교회 개척을 선택했다. 그는 1998년부터 18년간 서울 삼일교회 부교역자로 섬겼다. ‘교회 위해 일하다가 죽자’는 마음으로 기도와 전도에 매진했다. 새벽 4시30분이면 출근해 밤 10~11시 퇴근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과로로 쓰러졌고 몸이 심각한 상태임을 알게 됐다. 병원에서도 살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했다. 그때 박 목사는 “다시 살려주시면 오직 그리스도를 전하겠습니다”라고 서원하며 하나님께 매달렸다. 그 후 그는 기적적으로 완쾌됐고 수술을 받고 7년간 재활을 받았다.

더딘 회복 과정에서 그는 ‘죽음 이후 심판대 앞에 설 자신이 있는가’ ‘그리스도의 복음은 무엇인가’ ‘복음을 어떻게 전해야 하나’라는 깊은 질문 속에서 기도했다. 그때 켈러 목사를 알게 됐다. 그리고 ‘복음’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게 됐다.

박 목사는 “그때 감격은 대학생 때 성경공부를 통해 예수님을 만난 기쁨을 넘어서는 놀라운 인도하심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켈러 목사가 설립한 교회 개척단체인 ‘시티투시티(CTC)’를 통해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생태계를 얼마나 건강하게 하는지 깨닫게 됐다. 그는 “복음으로 교회를 개척하다가 실패하면 결코 실패가 아니다”는 용기를 갖고 2016년 5월 예수다솜교회를 설립했다. ‘다솜’은 사랑의 옛말이다.

예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교회

교회 청년들이 지난 2일 강원도 영월 운학 그리스도의교회에서 진행된 여름 수련회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예수다솜교회 제공

개척 초기부터 교회는 초신자 불신자 낙심자를 중심으로 성장해 나가기 시작했다. 현재 140여명이 출석 중이다. 이 가운데 청년부를 포함해 다음세대가 절반이다. 다음세대 사역을 중심으로 두고 훈련에 집중하자 아이들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교육부서 공간이 협소해지자 어른들은 본당으로 사용하던 공간을 내주고 교회 인근 대형 카페를 빌려 예배를 드리고 있다.

박 목사는 “청년과 다음세대 아이들이 교회의 미래이기 때문에 말씀을 제대로 먹이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다음세대를 살리는 데 전심전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척 초기부터 교회는 지역을 섬기며 행복지수를 높이고 있다. 김장을 해서 나누는가 하면 코로나 때는 생존 박스를 만들어 전달했다. 절기헌금도 모두 어려운 이웃에 흘려보내며 사랑을 베푸는 교회로 지역민에게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박 목사가 지켜온 목회 원칙은 두 가지다. 십자가 복음이 항상 설교의 중심이 되는 것과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서로 지체가 돼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곳이 교회라는 교회론을 기초로 목회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주의가 아닌 ‘교회보다 하나님 나라’라는 선교적 교회관”이라며 “이 두 가지 방향을 바탕으로 영적 제자도를 형성해 나가며 세상에 소망을 주는 교회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꿈 너머 꿈 프로젝트’ 교회 선정

예수다솜교회 영유아부 아이들이 지난 5월 교회 영유아부실에서 어린이날을 맞아 아빠와 함께 찬양 율동을 하고 있다. 예수다솜교회 제공

예수다솜교회는 지난 3월 분당우리교회(이찬수 목사)가 진행한 ‘꿈 너머 꿈 프로젝트’(작은 교회 세우기) 교회로 선정됐다. 박 목사는 “더 훌륭한 분이 많은데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은혜를 주셨는지 감사드릴 뿐”이라며 “저를 비롯한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위로가, 선정되지 못한 교회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빚을 내면서까지 섬기려는 분당우리교회에는 감사한 마음이 크다”고 고백했다.

이어 선정된 이후 ‘우리 교회는 정말 좋은 교회인가’를 고민하면서 몇 주 동안 설교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좋은 교회, 설교에 대한 부담감이 커지면서 이게 나의 우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발견했습니다. 다시 본질에 충실하자는 생각입니다. 복음이 청중보다 저에게 먼저 적용되고 성도를 더 사랑하는 목자가 될 뿐 아니라 교회의 주권을 주님께 맡기기를 원합니다.”

박 목사의 바람은 한 영혼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성도들의 삶에 더 깊이 들어가 돕고 싶다”며 “성도들도 하나님의 부흥을 사모하면서 살아 있는 신앙인이 돼 하나님의 등불이 되고 교회는 복음 중심으로 세워져 세상에서 하나님의 장막을 펼쳐내는 공동체가 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