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때 중학생 과외를 시작했다. 고교 3학년 때는 쉬었지만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다시 과외를 시작했다. 대학 4년, 직장 시절 2년을 포함해 총 6년간 입시 과외를 했다. 과외로 번 돈은 가족 생활비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어쩌다 한 달 정도 가정교사 자리를 얻지 못했는데 그때는 마치 실업자가 된 기분이었다. 돈이 바닥나면 어쩌나 싶어 얼마나 조바심을 냈는지 모른다.
과외 아르바이트에 교회 봉사로 바빴지만 시간을 쪼개 열심히 한 게 하나 더 있다. 고등부 후배의 입시 준비를 도운 일이다. 이들의 공부를 봐주겠다고 나선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당시 교회 고등부는 입시 결과가 좋은 학생이 적어 교회 어른들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나의 서울대 합격으로 고등부의 명예는 지켰지만 아직 내가 할 일이 남았다고 느꼈다. ‘고3 후배들과 같이 지내며 공부를 봐주면 좋은 결실이 있지 않을까.’ 결심이 선 나는 목사님과 장로님을 찾아갔다. “대학입시 준비하는 고등부 학생을 위해 방 하나를 마련해주십시오.”
교회 어른들은 어린 나를 믿고 선뜻 작은 방 한 칸을 내줬다. 고3 수험생 4명에 대학생 1명이 먹고 살며 공부하는 ‘입시 준비 공동체’가 출범한 것이다. 나는 수업과 과외를 마치고 돌아오면 후배 4명의 공부를 도왔다. 이때 함께 보낸 1년은 나 자신에게도 유익한 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대학 신입생에게 방을 내준 교회의 용단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1년 뒤 후배 4명 중 2명인 박성남과 한인권이 연세대와 서울대 의대에 각각 합격했다. 안타깝게도 입시 공동체 생활은 1년 만에 끝났다. 교회에서 계속 진행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학 새내기 시절 또 다른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선교단체 신앙훈련을 받은 일이다. 캠퍼스에서 한 전도자를 만났는데 이때 들은 내용이 신기했다. 복음을 짧은 시간에 아주 쉽게 전달하는 게 아닌가. 방법을 문의하자 그분은 기꺼이 나를 개인적으로 양육해줬다.
당시 우리 교회엔 대학부가 없었다. 예배 외엔 특별한 훈련을 받을 수 없었다. 영적 갈증을 느꼈던 나는 이 선교단체에서 매우 강한 신앙 훈련을 받았다. 성경 암송이나 큐티도 배웠지만 무엇보다 믿지 않는 이들에게 전도하는 훈련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학업에 소홀해졌고 학교생활도 소극적으로 했다. 대학생으로 합당한 삶을 살지 못했다.
누군가 그때 내게 ‘왜 공부를 소홀히 하느냐’고 물었다면 아마도 ‘주님을 위해 모든 걸 배설물로 여겼다’고 답했을 것이다. 선교단체 훈련은 좋았지만 대학생으로서 정상적 삶을 살지 못한 건 여전히 아쉽다. 이는 훗날 대학생 훈련에 대해 깊이 숙고하는 계기가 됐다.
경건도 중요하지만 사역을 위한 훈련보다는 기독교인으로 책임 있는 삶을 살기 위한 훈련이 보완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졸업하면 당장 일터 현장에 나갈 대학생에게 일과 직업에 대한 성경적 가치관은 꼭 필요하다. 그렇기에 일터에서 삶으로 믿음을 드러내는 것에 관해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