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사람의 소리를 경계합니다. 사람의 소리가 높아지면 은혜의 나라가 무너지고 사람들의 영혼이 죽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의 소리를 죽이고 대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받기까지는 복잡한 심문 과정이 있었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대제사장에게 끌려가 심문을 받았고 이어 산헤드린 공의회로 끌려가 심문받습니다. 그리고 총독 빌라도에게 끌려가 심문을 받았지만 빌라도는 예수님을 분봉왕 헤롯에게 보냅니다. 하지만 헤롯은 예수를 다시 빌라도에게 보냈고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 다시 서게 됐습니다. 결국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형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심문했던 사람들은 왜 예수님을 죽이려 했을까요. 예수가 자신들에게 끼칠 손해에 대한 계산이 서로 같았기 때문입니다. 제사장들은 예수로 인해 기득권을 빼앗길지도 모릅니다. 헤롯왕도 왕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지도 모릅니다. 빌라도도 총독에서 해임될지도 모릅니다.
결국 예수님을 심문했던 그들 모두는 서로 다른 이유지만 같은 계산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 때문에 우리가 손해를 볼지도 모르니 예수는 죽어야 한다.” 그리고 소리쳤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눅 23:23) 그날에 사람의 소리에 의해 하늘의 소리와 진리의 목소리가 묻혔습니다. 사람의 소리가 예수님의 목소리와 하나님의 음성을 가렸습니다. 결국 사람의 소리에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입니다.
태초에 세상은 하나님의 음성으로 가득했습니다. 천지 만물이 완성되던 날 하나님께서는 “보기에 좋다”고 외치셨습니다. 기쁨에 찬 하나님의 음성 속에 천하 만물은 기쁘고 즐겁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하나님의 음성이 필요합니다. “기쁘다 좋다 복되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가득해야 만물이 복을 얻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를 계속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사람들이 비참한 인생을 살게 됐나요. 하나님의 음성이 아닌 사탄의 소리와 사람의 소리가 커졌을 때입니다. 뱀의 유혹에 따라 자신의 소리를 높였던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바벨탑을 쌓아 하늘에 닿아보자고 하던 자들의 소리로 인해 사람들이 온 땅으로 흩어졌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소리가 높아지던 이스라엘은 결국 바벨론 땅으로 쫓겨 갔습니다. 사람의 소리가 높아진 결과는 멸망이고 그 인생들은 죽음의 길로 걸어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이 사람의 소리를 이길 때는 은혜와 생명의 나라가 세워졌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던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던 그때부터 믿음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세워졌습니다. 선지자들이 흘린 하나님 눈물의 음성이 높아졌기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을 애타게 부르시던 예수님의 음성이 있었기에 바울은 이방의 사도가 됐고 예수님의 복음은 온 세상에 전파됐습니다.
우리 안에 사람의 소리를 죽여야 합니다. 안 그러면 믿음의 소리가 죽습니다. 끝내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대신에 하나님의 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통로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성경을 집중해 읽으십시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또 다른 통로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무엇보다 하나님과 대화하는 자리입니다. 기도하는 자리를 항상 지키십시오.
최봉림 목사(새론교회)
◇경기도 고양시 도래울 지역에 위치한 새론교회는 복음 전파와 다음세대 양육에 비전을 두고 있습니다. 복음에 대한 열정과 성도들의 헌신으로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오히려 부흥을 이룬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