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등급 강등으로 드러난 천문학적 美 나랏빚 ‘시한폭탄’

입력 2023-08-04 04:06
사진=AP연합뉴스

국제 신용평가기관 피치의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 후폭풍이 거센 가운데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일(현지시간) “진짜 걱정해야 하는 건 주식과 채권 같은 투자 대상이 아니라 미 연방정부의 천문학적인 국가부채 규모”라고 보도했다.

미 의회재정국(CBO)에 따르면 2007년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22%에 불과하던 연방정부 부채 규모는 2011년 GDP의 76%로 올라간 뒤 올해는 110% 가까이 증가했다. 정부가 거둬들이는 세금은 물론 민간부문의 1년 치 총생산 가치를 다 투입해도 나랏빚을 갚을 수 없다는 뜻이다.

최근 하원이 통과시킨 2024예산안에 따르면 올해 조 바이든 행정부는 국가부채 가운데 원금을 제외한 1년 치 이자로만 7450억 달러(약 966조7120억원)를 갚아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나라 올해 전체 예산(639조원)의 1.5배에 해당하는 돈을 이자로 지급해야 하는 셈이다.

미국의 국가부채는 집권하는 행정부마다 적자 재정을 편성하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 지속해서 누적됐다. 제조업이나 수출 대신 서비스업과 수입, 내수에 의존하는 미국 경제구조상 적자 재정이 불가피하지만 문제는 2000년대 이후 국가부채의 증가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졌다는 것이다.

그 시작은 2008년이었다. 이듬해 집권한 버락 오바마 당시 행정부는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금융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재정지출 조치를 취했다. 순식간에 국가부채 규모가 GDP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게 됐다.

결정적인 계기는 2020년 발생한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는 전통적으로 적자 재정에 반대해온 공화당 당론과 다르게 전 국민을 상대로 코로나 보조금을 지급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부채는 단 3년 사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WSJ는 “2009~2011년 급증한 국가부채는 그나마 지금보다 심각하지 않았다”면서 “그때는 ‘제로 금리’ 시대였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국가부채가 늘어난다 해도 이자 발생 여지가 없었던 만큼 연방정부의 재정적 타격이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전혀 낙관적이지 않다는 게 재정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지난해부터 연방준비제도(Fed)가 1년 이상 연쇄적으로 금리 인상을 단행해 국가부채의 추가 이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발생하게 됐다는 게 신문의 분석이다.

WSJ는 “5.25% 기준금리로만 계산해도 미국 국가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면서 “역대 행정부가 수십년간 원금 상환을 미뤄온 탓에 국가부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누적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신용등급 강등 파문에 따른 주식과 채권 시장의 폭락은 쉽게 진정되겠지만 미국의 재정 상태는 낙관하기엔 너무 위태롭다”며 “미국 국가부채는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는 ‘시한폭탄’ 상태”라고 경고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