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 사회 사교육비 총액은 26조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3월 교육부와 통계청이 공개한 ‘2022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교육 참여율은 78.3%에 달한다. 다음세대 학부모 10명 중 8명이 학교 밖 보충수업에 지갑을 연 셈이다.
‘누구나 선망하는 학교 선발 인원은 정해져 있는데…. 다음세대 가운데 사교육에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 원하는 결과를 얻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최인설(41) 엘오이 코리아(LOE KOREA) 대표를 교육계로 이끈 근원적 질문이다.
영어유치원을 대비한 ‘4세 고시반’과 ‘초등 의대반’이 열리는 사교육 광풍 시대다. 이 열기를 식혀야 한다는 여론에도 정작 당사자인 학생과 학부모는 멈추지 않는 ‘사교육 치킨게임’이 수십 년간 반복돼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최 대표는 “점수보다 중요한 건 자녀의 생존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며 2015년 교육 기업 엘오이 코리아를 세웠다. 청소년에게 국·영·수 수업이 아닌 ‘진로·적성 탐색을 위한 양질의 경험과 콘텐츠’를 제공하는 그를 최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산학관에서 만났다.
국·영·수보다 중요한 생존 능력
고려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경영 컨설턴트로 4년간 일해온 최 대표가 ‘사교육의 비효율’을 고민하게 된 데는 교회 중고등부 교사 경력이 크게 작용했다. 20대 중반부터 11년간 교회 교사를 지낸 그는 사교육을 6년 넘게 받아도 성적 향상이나 명문 학교 진학에 어려움을 겪는 제자를 여럿 만났다. 문제는 이들이 점수에 맞춰 진학한 대학과 전공대로 직업을 찾다 보니 졸업 후 진로를 놓고 고민하는 경우가 꽤 많다는 것이었다.
“교회 중등부 교사를 하며 만난 제자들이 지금은 서른 가까운 나이가 됐어요. 청소년기부터 이 친구들의 삶을 지켜봤는데 평균 월 30~40만원을 사교육비로 써도 비약적 성적 향상을 하는 이들은 소수더라고요. 돈은 돈대로 들고 시간도 많이 썼는데 정작 결과가 없는 거죠. ‘우리 사회에서 사교육으로 증발하는 돈이 얼마나 많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흔히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데 왜 아직도 학생과 학부모는 성적에 울고 웃을까. 당시 최 대표가 교회 안팎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성적이 올라 명문 학교에 가면 사회 나가서 좋은 직업을 얻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수많은 청소년이 사교육을 받는 이유가 ‘우리 사회에서의 생존 능력 함양’에 있다고 파악한 그는 이를 키우는 교육 기업 설립을 결심한다.
“창업 전후로 만난 교육·진로 전문가들은 하나 같이 성적보단 ‘좋은 커뮤니티와 양질의 정보’가 인간 성장을 좌우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입시도 그렇지만 사회 진출을 위한 직업 탐색과 체험에서도 유익한 공동체와 정보가 필수거든요. 제가 개개인의 시야나 주변인 경험, 소속 학교 너머에도 정말 괜찮은 직업이 많다는 걸 알리는 교육 스타트업을 만든 이유입니다.”
작은 성공 경험이 미래를 바꾼다
회사 이름인 엘오이는 ‘놀이터’의 한글 초성을 영어 대문자로 표기한 것이다. 최 대표가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동네 형이나 누나와 어울리며 각종 정보를 접했던 기억을 반영했다.
‘청소년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이란 기치를 내걸고 엘오이를 시작한 그는 기업과 교육·공공기관과 협력해 전국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색다른 진로 교육에 나섰다. 엘오이는 이를 위해 금융 코딩 인공지능(AI) 등 직업 체험 관련 프로그램을 여럿 개발했다. 대학생 멘토와 소셜벤처를 세워보는 ‘프로젝트 스쿨’, 가짜뉴스를 보고 주식 투자를 하며 미디어 독해력을 키우는 보드게임 ‘씸즈트루’ 등이 대표적이다. 온라인 또래 커뮤니티 앱 ‘틴잇’도 출시해 자기와 관심이 비슷한 친구, 선배와 정보를 공유하도록 도왔다.
그가 만난 청소년 중에는 프로그램 참여를 계기로 인생 전환점을 맞은 이들도 있다. “공부에 관심이 없어 수업시간에 잠만 자던 중학교 3학년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에게 ‘소셜벤처 경연대회’를 권했더니 상금이 탐난다며 친구 2명과 팀을 꾸리더군요. 아이디어를 다듬어주니 시제품도 만들고 해당 대회에서 장관상을 받았습니다. 이후 아이가 적극적으로 바뀌어서 고등학교 전교 회장도 하고 대학교 홍보모델도 하더군요. 작은 성공 경험으로 삶의 태도가 바뀐 사례입니다.”
2020년 1월 서울 성북구에 오프라인 공간 ‘엘오이 성북지점’을 열며 점차 성장하던 회사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역풍을 맞는다. 모임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각종 프로그램 운영에 차질을 빚어서다. 재도약을 위해 최 대표는 온라인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개편했다. 8월 선보인 AI 진로 튜터링 서비스 ‘랜드(L.and)’가 주력 아이템이다. 자녀교육을 위한 ‘가족 습관 앱’으로 부모와 자녀가 건강한 습관을 매일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다. 회사는 조만간 사명을 엘오이에서 랜드로 개명해 새 서비스 홍보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앞으로도 ‘청소년이 자기다운 삶을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쓰겠다는 게 최 대표의 목표다. 그는 “사교육 비용이 모두 낭비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적잖은 청소년과 학부모가 막연한 두려움에 사교육 업체를 찾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이어 “부모 경제력 등 배경에 상관없이 더 많은 청소년이 자기가 원하는 미래를 그려가도록 다양한 경험과 만남, 유익한 루틴과 정보를 제공하는 교육 기업이 되겠다”고 밝혔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