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범죄 해소 숙제… 빗장 풀기도 걸기도 잘해야 ‘통합’

입력 2023-08-02 04:06
게티이미지

“‘국민 여론조사를 해보면 아마 (외국인) 차별을 찬성하는 쪽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게 정책을 하는 사람의 고민이다’라고 말씀하시더라.”

한국이민학회장인 한건수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지난 5월 26일 ‘이민법제 및 이민행정의 헌법적 검토’ 학술대회에서 “최근 들어 우리 사회의 민낯이 드러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가 만난 한 정부 관계자가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가사근로자법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토로한 대목을 소개한 것이다. 한 교수는 “결국 국민들과 어느 수준까지 동행할 것인가, 국민 지지를 얻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인의 이민자에 대한 태도에는 ‘경제적 필요성’과 ‘심정적 거부감’이 뒤섞여 있는 실정이다.

“外人 늘어야” 응답, “줄어야”의 2배

저출산·고령화에 대응하는 이민정책에서 빠뜨릴 수 없는 과제는 사회통합 방안을 촘촘히 설계하는 일이다. 한국인에게 실존하는 외국인 차별·편견을 그대로 두고 경제적 효과만 따지는 일은 성공적일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동시에 현재까지 드러난 지역사회의 슬럼화, 외국인을 중심으로 증가하는 마약범죄 등 부작용을 손보는 일도 필수적이다.

정부 측 인사가 ‘(외국인) 차별을 찬성하는 쪽이 훨씬 많을 것’이라고 했다지만 한국인의 인식은 최근 들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이민정책연구원이 국민통합위원회 의뢰로 지난 4월 실시한 인식조사에서 응답자의 41.9%는 “(이주민 인구가) 늘어나야 한다”고 답했다. “줄어야 한다”는 응답 비중(22.3%)의 2배에 가까웠다. 2년여 전인 2020년 9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서는 이주민에 대해 ‘비우호적’이라는 응답이 52.9%로 ‘우호적’(47.1%) 응답을 상회했었다.

이 조사를 진행한 이민정책연구원의 장주영 부연구위원은 “국민이 이주민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반감과 걱정을 표하던 인식이 이젠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에게 이주민은 더 이상 낯설기만 한 존재가 아니며, 인구절벽 문제의 대두로 이들의 수용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 한국 체류 외국인은 224만5912명(장기체류 168만8855명)으로 전체 인구의 4.4%를 차지했다. 각종 미디어, 유튜브에 출연하며 유명세를 얻은 외국인도 많다.

“사람을 기계로 본다”
지난달 24일 한국의 ‘차이나타운’인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의 직업소개소 앞에서 한 중국동포 노동자가 배달기사, 지게차 운전자 등 각종 구인광고를 읽고 있다. 노동계는 고용 현장에서의 외국인 노동자 차별행위가 여전하다고 본다. 권현구 기자

종전까지의 배타적 인식이 조금씩 변한다지만 노동계는 고용 현장에서의 외국인 노동자 차별행위가 여전하다고 본다. 노동계가 고쳐져야 할 것으로 입을 모으는 제도는 입국 시 정부로부터 허가받은 특정 사업장에서만 취업할 수 있게 하는 ‘고용허가제’다. 안건수 이주민노동인권센터 소장은 “최근에는 사업장 변경 동의 조건으로 300만~500만원을 요구하는 경우가 속출한다”며 제도가 악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노동자가 사실상 2~3개월을 무급으로 일해준 뒤 울며 겨자 먹기로 이직하는 격이라고 안 소장은 전했다.

헌법재판소는 외국인 노동자의 이직에 엄격한 사유를 요구하는 이 제도의 기본권 침해 여부를 깊이 고민했고 2021년 12월 합헌 판단을 내렸다. 한마디로 “아직까지는 우리 사회가 고용허가제를 필요로 한다”는 판단이었다. 결정문에는 ‘인력의 안정적 확보와 원활한 사업장 운영’ 필요성,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의 절박한 상황’에 대한 우려가 함께 들어 있다. 다수의견 재판관 7인이 초점을 맞춘 대목은 영세 중소기업의 현실적 상황이었다. 나머지 재판관 2인이 보다 중시한 것은 외국인 노동 환경의 개선이었다.

외국인 노동자를 일회성 노동력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은 진정한 인구구조 문제의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안 소장은 “우리 광부와 간호사들이 파독(派獨) 노동자였던 때가 1960~70년대인데, 5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외국인을 사람보다는 기계에 가깝게 대우하고 있다”고 했다. 한 교수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존재로서의 이주민에 대한 논의만 열심히 이뤄지는데,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대안적 고민이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부작용 규제도 필요

외국인 범죄율이 내국인 범죄율에 비해 높지 않음에도 일부 사례가 정치적 목적으로 부풀려진다는 지적이 그간 많았다. 다만 마약에 대해서는 체류 외국인의 증가와 범죄의 확대가 유의미한 관계임이 입증돼 있다. 지난해 말 기준 마약류범죄로 단속된 외국인은 2573명으로 4년 전보다 171.4% 늘었다. 전체 마약류사범의 증가 폭(45.8%)에 비해 크게 두드러진 수치다. 대검찰청은 “전체 마약류사범 중 외국인 비중이 14%지만 밀수사범 중 외국인 비중이 약 40%”라며 “외국인에 의한 마약류 밀수가 심각하다”고 했다.

이민정책과 사회통합 분야를 연구해온 이들도 태국 등 동남아 출신 노동자들이 ‘야바’(YABA·붉은 꽃) 등 신종 마약을 밀반입해 투약·판매하는 행위를 언급한다. 야바는 태국에서 유행하는 신종 마약으로 필로폰과 카페인을 섞어 만든 붉은빛의 약제다. 1정당 불과 100밧(약 3500원)에 거래될 정도로 태국에서는 쉽게 구하는데, 국제우편으로 이를 반입하는 이들은 잇따라 중형을 선고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삼삼오오 모인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걸(마약) 피우면 피로감이 덜하더라’는 식으로 범죄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외국인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범법행위가 빈번해지는 치안 악화 현상도 감지된다. 이상림 보건사회연구원 인구모니터링평가센터장은 “농촌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마약을 하는 사례가 빈번하고, 공단에는 이들을 타깃으로 하는 전용 단란주점이 생겨나며, ‘조폭’과 결탁하기도 한다”며 “특정 지역의 ‘슬럼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외국인 전용) 업소의 존재를 인지하는 만큼 정기점검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민정책의 스펙트럼은 유치부터 관리·규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빗장을 푸는 일과 거는 일이 시의적절하게 이뤄져야 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주민에 대한 사회적 배려를 강화하면서도 다른 나라의 사회통합 실패 사례를 거울삼아 합리적 규제책까지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문병기 한국이민정책학회장은 “내국인과 외국인 양자가 모두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내국인은 외국인이 정주해 살 수 있는 시스템을 많이 만들어주고 이주민도 지금보다는 좀 더 진지하게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지훈 이택현 정진영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