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외국인 범죄자는 2021년 기준 3만명 수준에 이른다. 여기에 외국인이 피해자인 경우의 사건까지 더하면 범죄에 연관된 외국인 피의자나 피해자의 수는 훨씬 더 많아진다. 경찰과 검찰 수사, 이어 재판까지 한국어 소통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25년차 베테랑 사법 통역사인 공경아(52)씨는 최근 국민일보와 만나 “내가 형사나 검사는 아니지만, 통역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수사 기관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참 보람된다”고 말했다. 대만에서 동양어문을 전공한 그는 1999년 한국에 돌아와 줄곧 중국어 사법 통역 일을 해왔다. 경찰·검찰·법원은 1년~3년에 한 번씩 다양한 언어의 사법 통역사들을 모집하고 있다.
공씨의 업무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통역만 하는 것이 아니라, 피의자가 편안한 상황에서 진술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수사에 유리한 진술을 받아내기도 한다.
한번은 한 중국인 절도 피의자가 서울 종로구에서 노트북을 훔친 혐의로 붙잡혔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물건을 훔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선처를 호소했다. 잠시 쉬는 시간, 공씨는 절도범과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러자 절도범은 “사실은 신촌이랑 영등포에서도 물건을 훔쳐서 장물아비한테 넘겼다”며 죄를 고백했다고 한다.
사법 통역이 생소하던 때부터 오랜 시간 일해온 만큼 공씨는 다양한 사건을 접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2012년 수원 토막 살인사건의 범인 오원춘이다. 공씨는 “보통 통역을 하러 들어가기 전 경찰이나 수사관들이 어떤 사건인지 미리 언질을 주는데, 그날은 모두가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조사실에는 앉은키가 유독 크고 손이 일반 여성의 두 배에 달하는 한 남성이 앉아있었다. 검사가 ‘미란다 원칙’을 고지해주라고 해 중국어로 전달하자 오원춘은 공씨를 비웃으며 “(한국어를) 다 알아듣습니다”라며 한국어로 정확하게 말했다. 공씨는 “수많은 피의자를 만나왔지만, 한마디만 듣고도 전신에 소름이 끼쳤던 사람은 오원춘이 처음이었다”고 전했다. 오원춘이 한국어를 할 수 있었기에 공씨는 조사실에서 나왔고, 이후 그 남성이 오원춘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피의자에게 협박 문자를 받기도 한다.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통역사의 휴대전화 번호가 노출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한 피의자는 조사가 끝나고 1년 동안 공씨에게 집요하게 협박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재판 과정에서 “통역사를 보호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돌아온 건 “알아서 조심하는 수밖에는 없다”는 판사의 말이었다.
그럼에도 공씨는 “불러주는 곳만 있으면 힘이 빠져서 더는 못할 때까지 사법 통역일을 하고 싶다”며 직업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그는 요즘도 통역 업무가 없는 날이면 중국 범죄 드라마를 보고 뉴스를 읽으며 5시간씩 중국어 공부를 한다고 했다.
글·사진=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