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가 혼수상태에 빠진 지 스무날이 지나자 교인들은 장례를 준비했다. 순교의 각오를 다진다며 미리 준비한 목사의 영정 사진이 실제 장례식에 걸리기 직전이었다. 2년 전 코로나19에 감염돼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심하보 은평제일교회 목사 이야기다. 31일 서울 은평구 교회에서 심 목사를 만났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7월. 정부는 예배당 수용 인원의 10%, 최대 19명 이내만 대면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방역 지침을 발표했다. 심 목사와 교인들은 정부 지침에 맞섰다. 방호복을 입고 대면 예배를 강행했다. 이 모습은 한국을 넘어 외신에까지 보도됐다. 사람들은 심 목사를 ‘전사 같다’고 했다.
그렇게 전사 같던 그가 쓰러졌다. 두 달 뒤인 9월 8일이었다. 코로나로 기저질환이 악화하면서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 자가호흡을 하지 못하는 상태로 음압병동에 들어갔다. 모두가 손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담임목사를 잃을 위기에 처한 교인들의 충격은 가족 못지않게 컸다. 심 목사의 아내 신문자 사모는 중직들을 모았다. 장례 절차를 의논했고 후임자 청빙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슬퍼할 수도 없는 시간이 흐르고 있을 때 음압병동의 심 목사가 눈을 떴다. 입원한 지 30일째 되던 날이다. “오늘이 며칠인 줄 아세요?” 눈만 껌벅이던 그에게 방호복 차림의 간호사가 다가와 물었다. 일반 병동에서 열흘간 더 머문 그는 40일 만에 퇴원했다. 교인들 앞에 모습을 보인 건 11월 7일 주일예배에서다. 심 목사는 이날 “덤으로 사는 인생을 주님께 붙들린 자로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심 목사는 지난 16일 교회 설립 42년 감사예배에서 깜짝 발표를 했다. 6일 예배를 끝으로 담임목사직에서 은퇴하겠다고 선포했다. 올해 나이 71세. 예상보다는 앞당긴 은퇴다. 폐 기능은 회복했지만 간혹 교인들의 얼굴과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 은퇴 계기가 됐다. 심 목사는 “선한 목자라면 양의 이름과 얼굴은 알아야 한다”며 “손을 떨 정도로 건강이 안 좋으면 목회를 내려놓겠다고 말해왔다. 손을 떨진 않지만 이런 상태로 목회를 고집하는 것은 노욕이라 생각해 은퇴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심 목사의 은퇴 기념 및 이취임 감사예배는 6일 오후 5시 교회에서 열린다. 후임으로는 심 목사 입원 이후 예배 설교를 도와온 ANI선교회 대표 이예경 목사가 선정됐다. 심 목사는 “42년간 제대로 된 휴가 한 번 가지 못했다”며 “최선을 다했기에 담임 목회를 내려놓는 아쉬움은 없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지난 40여년을 목회에 미쳐 살았다”며 은퇴 후 아내에게도, 자신에게도 여유를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모든 사역에서 손을 떼는 건 아니다. 최근 한국 사회의 문제로 떠오른 마약 예방 사역을 펼친다는 계획이다. 사단법인 설립도 준비하고 있다. 심 목사는 “목회를 시작한 이후 모든 날이 은혜였다. 하나님 앞에 갈 때까지 할 수 있는 일들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