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재단 만들고 건물 기증해 돕고… 죽마고우의 ‘기부 동행’

입력 2023-08-02 03:06
조용근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이 지난 24일 서울 서초구 세무법인 석성 사무실에서 죽마고우의 유산 기부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국민일보DB

조용근(77) 전 대전지방국세청장과 외식사업가 김재홍(76)씨는 중학교 동창이다. 대구 경상중 시절 월사금을 제때 내지 못해 선생님께 혼나곤 하던 이들은 가난 속에서도 학업에 매진했다. 한 명은 1966년 국세청이 문을 열 때 9급으로 들어가 36년 공직생활 끝에 지방청장을 역임한 세무 전문가가 됐고, 다른 한 명은 럭비 특기생으로 명문대를 졸업한 뒤 한식 프랜차이즈사업을 하는 기업가로 여유를 갖게 됐다.

일흔을 넘긴 인생의 황혼기, 이들은 다시 ‘생전에 나눠서 지속적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유산 기부자로 함께하고 있다. 김씨는 2021년 2월 경기도 고양시 일산 동구청 인근 지하 1층 지상 3층의 건물을 통째로 기부했다. 당시 감정가액으로는 51억원, 현 시세로는 70억원에 육박하며 매년 임대료로 수천만원의 수익이 발생하는 곳이다. 기부처는 재단법인 석성장학회. 무학자인 조 전 청장의 부모님 가운데 이름 두 글자를 따서 만든 ‘석성(石成)’으로, 지난 30년간 가정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 4600여명에게 32억원 이상의 장학금을 지급해온 장학재단이다.

국민일보 감사를 맡고 있으며 세무법인 석성을 이끌고 있는 조 전 청장은 1일 “친구가 드러나는 걸 싫어해 건물의 등기부 등본도 그저 등기로 보내왔을 정도”라며 “신장 투석 등으로 건강이 좋지 않던 상황에서 생전 유산 기부를 해 주었는데, 기부 후엔 건강이 더 좋아져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죽마고우의 유산 기부 덕에 그해 서울 마포대교 난간에서 뛰어내리려던 청년을 붙잡아 생명을 살리는 데 일조한 서울 환일고 3학년 학생 4명에게 특별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장학금 운영 규모를 배 이상 늘릴 수 있었다. 조 전 청장은 “평생 세금쟁이로 살아온 나에게 장학재단을 만들게 하시고, 또 많은 분의 기부를 통해 장학 혜택을 늘리게 하신 걸 돌아보면 기적의 연속”이라며 “나눔의 길로 이끌어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경상중 동창 김재홍씨.

조 전 청장에 의하면 김씨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한 건물 역시 기부해 낙후된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의 자녀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사용하고 있다. 조 전 청장도 본인 유산의 일부를 다일공동체 밥퍼나눔운동본부에 기증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장학재단과 별도로 조 전 청장은 지적장애인 등 가장 어려운 처지의 중증장애인을 돕는 ㈔석성1만사랑회를 세워 성경 속 ‘작은 자’를 위한 나눔을 매달 실천하고 있다. 무엇보다 조 전 청장은 자녀들에게 가장 소중한 나눔의 유산을 물려주기로 했다면서 자신의 회고록 ‘나는 평생 세금쟁이’(나남)의 한 대목을 들려줬다.

“석성장학회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과 딸에게 나눔의 정신을 물려주는 유산이다. 딸 수빈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 처음 받은 월급 전액을 석성장학회에 기부했다. 딸의 결혼식 때 받은 축하금 5000만원과 아들 결혼식 때 받은 축하금 1억원을 모두 장학회에 기부하면서 아들과 딸도 장학회와 더없이 소중한 인연을 맺었다.”(347쪽)

한국세무사회 회장을 역임한 조 전 청장은 “우리나라도 독일처럼 공익 목적의 기부에 관해서는 별도의 증여세(목적출연세) 세율을 절반 이하로 감면해 주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면서 “유산 기부에 관한 세제 혜택과 전문가 비용 감면이 수반돼야 나눔 문화가 더 꽃피우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