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장마가 끝난 뒤 찾아온 한증막 더위가 일상까지 위협하고 있다. 체감온도가 35도를 웃돌면서 온열질환 탓으로 의심되는 사망자도 속출하고 있다. 농작업을 하던 70대 이상 고령층이 대부분이다. 살인적 폭염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무더위를 일시 식혀줄 소나기도 예보됐지만, 폭염 대세를 꺾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기상청은 “8월 초까지 전국적으로 폭염과 열대야가 지속될 전망”이라고 30일 예보했다. 이날 180개 기상특보 구역 중 제주 산간을 제외한 177곳에 폭염특보가 내려졌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체감온도가 사람 체온(36.5도) 수준에 근접하면서 특보가 전국으로 확대됐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서 주말 이틀 동안 최소 12명이 열사병 등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북 지역에서만 밭일을 하던 노인 6명이 연이어 사망했다. 이날 오후 2시8분쯤 경북 문경시 마성면에선 오전부터 밭에 나갔던 90대 남성이 길가에 쓰러진 채 발견됐다. 전날 오후 3시56분쯤 경남 남해군에서도 밭일을 하던 80대 여성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목숨을 잃었다. 소방 당국 출동 당시 여성의 체온은 43도에 달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기상청이 장마 종료를 선언한 지난 26일부터 29일까지 나흘간 전국에서 255명의 온열질환자가 나왔다. 지난 24~25일만 해도 온열질환자가 21명이었지만 29일에는 하루에만 73명이 발생했다. 올 들어 29일까지 누적 온열질환자 수는 1015명, 추정 사망자는 10명으로 집계됐다. 30일 상황까지 포함하면 사망자는 최소 15명이다. 이미 지난해 한 해 동안 발생한 온열질환 사망자수(9명)를 넘어선 수치다.
일부 지역에서는 폭염특보와 호우특보가 동시에 발효될 수 있겠다. 31일까지 내륙지방을 중심으로 돌풍과 천둥, 번개를 동반해 시간당 30㎜ 안팎의 강한 소나기가 내릴 전망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소나기가 내리는 지역은 일시적으로 기온이 내려가겠지만 습도가 급격하게 높아지면서 햇볕이 나게 될 경우 높은 체감온도를 유지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슈퍼 태풍’ 우려도 커지고 있다. 올해 수온이 평년보다 1.5도 이상 높아지는 ‘슈퍼 엘니뇨’가 발생하면서 역대급 폭염과 함께 예년보다 더 강력한 태풍이 발달할 가능성이 큰 환경이 됐다. 다만 6호 태풍 ‘카눈’은 국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카눈은 31일에서 다음달 1일 사이 일본 오키나와 부근 해상을 지나 다음달 3일쯤 중국 상하이 남남서쪽 해안에 상륙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