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동… 고성… 인사불성… 경찰 여전히 ‘주취자와 전쟁중’

입력 2023-07-31 00:04
서울 관악경찰서 신림지구대 소속 경찰관들이 최근 자정 무렵 신림역 근처 한 술집에서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남성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모습. 서영희 기자

코로나19 방역 조치 완화와 여름 휴가철 등으로 술자리가 늘면서 경찰의 주취자 대응 업무도 크게 늘고 있다. 지난해 연말 연이어 발생한 주취자 사망 사고 이후 일선 지구대의 주취자 대응 방식은 더 엄격해지고 조심스러워진 상황이다. 국민일보는 최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신림지구대를 찾아 야간 지구대 상황과 주취자 대응 모습을 지켜봤다.

신림지구대 전화벨 소리는 밤이 깊을수록 더 자주 울렸다. 지난해 전국에서 두 번째로 주취자 신고가 가장 많았던 곳이 서울 관악경찰서였다. 월평균 1411건에 달했다. 그중에서도 신림지구대가 담당하는 지하철 2호선 신림역 주변은 술집과 음식점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어 주취자 신고가 밀려드는 곳이다.

자정 무렵 신림역 근처 한 술집에서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남성이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구급대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한 경찰관은 서둘러 남성의 자세를 편안하게 한 뒤 복용 중인 약이 약이 있는지, 이전에도 같은 증상이 있었는지 등을 물었다.

해당 남성은 구급대원의 부축을 받아 구급차에 오르는 듯하더니 다시 술자리로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경찰관과 구급대원이 병원에 갈 것을 권했지만 남성은 “이제 괜찮다”며 한사코 거절했다. 함께 있던 그의 부인은 실랑이가 길어지자 경찰관을 향해 “알아서 하겠다. 가시라”고 고함을 치기도 했다. 경찰이 택시를 잡아주겠다고까지 제안했지만 부부는 막무가내였다. 경찰관은 “이렇게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이 많다”며 “병원 방문을 거부하면 귀가하라고 설득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거부하면 철수하는 수밖에 없다”고 답답한 듯 말했다.

지난 21일 신림역 인근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벌어진 뒤로는 긴장감 강도가 훨씬 세졌다. 의식을 잃은 주취자 상태를 살피는 일도 경찰 몫이지만, 주취 난동으로 인한 시민 피해를 막는 일 또한 경찰의 주요 역할이기 때문이다.

새벽 2시쯤 흉기 난동 현장 주변에서 한 여성이 옷을 벗고 난동을 부린다는 신고가 접수되자, 순찰차 3대가 동시에 달려갔다. 한 식당에서 술을 마시던 여성은 추모 꽃이 놓여 있는 곳에서 울부짖으며 상의를 풀어헤쳤다. 경찰관들이 급히 점퍼를 덮어주며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시켰다. 재차 옷을 벗으려던 여성은 자신을 말리는 경찰관의 얼굴을 손으로 때렸다. 곧바로 선임 경찰관이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고 “공무집행방해 혐의 현행범으로 체포하겠다”며 수갑을 채웠다.

여성이 지구대에서 한바탕 더 소동을 벌이고 떠난 새벽 4시. 이번에는 다른 술집에서 남성이 주먹을 휘두르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남성은 시비가 붙은 일행을 가리키며 “내가 저 사람들을 때리고 연행되면 될 것 아니냐. 열 받아서 못 참겠다”고 자신을 에워싼 경찰관들을 향해 돌진했다. 경찰이 “이렇게 많이 취해서 돌아다니면 위험하다”며 20분 넘게 만류한 뒤에야 남성은 귀가했다.

서서히 동이 터오는 새벽 5시반쯤 지구대로 돌아온 경찰관들의 셔츠는 땀으로 범벅이었다. 신림지구대 관계자는 30일 “흉기 난동 사건 이후 주취 폭력이 다소 줄긴 했지만 단순 주취자 신고는 꾸준하다”라며 “시민들이 불안하지 않도록 단순 주취자여도 신경을 써서 대응하는 등 치안 활동 제고를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김재환 기자 j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