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심하게 체해 한의원에 다니고 있다. 위장이 약해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아도 음식을 소화시키지 못하는 부실한 몸으로 삼십여년을 살아오다 보니 이런 통증에는 익숙했지만, 처음 간 한의원에서 만난 의사 선생님의 질문이 새로웠다. 왜 체하는지 알고 있냐는 질문이었다.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선생님은 맞다고 말하며 위의 움직임 역시 뇌가 관장하는데, 어떤 체질은 뇌에서 위협을 받는다고 느끼면 위장의 운동을 멈춰버린다고 덧붙였다. 반면 스트레스를 받아도 소화에는 문제가 없는 체질도 있는데, 그 방면으로 진화에 성공한 것이라고 했다.
나의 소화기가 스트레스에 취약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것이 덜 진화한 탓이었다니…. 신기하면서도 납득이 되는 말이었다. 타고 나기를 마른 몸에 혈압과 맥박이 모두 평균보다 과하게 낮았고 언제나 외부 자극에 지나치게 예민했다. 의사 선생님은 이런 체질은 옛날 같았으면 낮에 밭일 잠깐 하고 하루 종일 누워 있기만 했을 거라고 했다. 침을 맞으며 누운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렇게 효율이 떨어지는 몸이라면 차라리 현대에 태어나 다행이었다. 몸을 쓰며 먹고살아야 했던 시대에 태어났다면 분명 도태되거나 인간 취급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의사 선생님은 나를 위로하듯, 그러나 단호한 말투로 뒤이어 말했다. 그러나 체질의 좋고 나쁨 같은 것은 없으며 타인과 비교할 필요 없다고. 다 타고난 장단점이 있고, 그것을 잘 인지하고 보완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나 같은 체질은 대신 당뇨나 관절염으로부터 자유롭고, 기분이 좋지 않거나 상처를 받았다고 느끼면 식사량을 줄이거나 건너뛰는 방식으로 관리하면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이 신기할 만큼 위로가 됐다. 어릴 때부터 쉽게 아프고는 했던 유별나게 약한 몸을 탓하며 살아왔는데, 몸에게 미안해졌다. 비교할 필요 없다, 타고난 것을 아끼며 살아가야겠다, 다짐하며 한의원 침대 위에서 스르르 잠에 들었다.
김선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