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28일 김영호 통일부 장관 임명을 재가하고 임명장을 수여했다. 지난달 29일 김 장관을 내정한 지 한 달 만이다.
김 장관은 윤석열정부 출범 후 국회의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15번째 국무위원이 됐다. 앞서 윤 대통령은 국회가 김 장관에 대한 청문보고서를 법정시한인 지난 24일까지 채택하지 못하자 27일까지 청문보고서 재송부를 요청했다. 재송부 시한까지 청문보고서를 받지 못하자 임명 절차를 밟은 것이다.
통일부는 김 장관 임명에 맞춰 80여명의 인력을 감축하는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예고했다. 윤 대통령이 “통일부가 마치 대북지원부 같은 역할을 해 왔다”고 지적한 데 따른 것이다.
통일부는 경색된 현 남북관계를 반영해 각 조직의 역할을 재정립한다는 방침이다. 교류협력 조직을 통폐합하고, 정보분석 분야와 북한 인권 관련 기능은 강화하는 방향이다. 문승현 통일부 차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들을 만나 “현 남북관계에 걸맞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개편 배경을 설명했다.
통일부의 대규모 개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정권마다 인력을 감축하거나 증원하며 변화를 모색했다. 전문가들은 통일부가 현실에 맞춰 변화를 꾀하되, 대북 교류협력이라는 본연의 기능이 퇴색되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MB정부 출범 때 통일부 존폐 위기 겪어
통일부의 전신인 통일원은 1998년 김대중정부 출범 후 통일부로 바뀌면서 격동의 시기를 맞았다. 김대중정부는 처음 1년간 내부 조직진단을 진행했다. 그 결과 통일부 정원이 528명에서 387명으로 대폭 축소됐다. 역대 최대 규모 인원 감축이었다. 당시 외환위기 여파가 컸지만, 전 정권 통일원에서 정책 성과가 부진했던 영향도 있었다.
전임 김영삼정부는 남북정상회담 추진과 대북 쌀 지원 등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노무현정부 들어서는 통일부 인력이 꾸준히 늘었다. 2003년 420명이던 정원이 2007년 550명으로 증가했다. 당시 통일부 장관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겸임하는 등 부처의 역할도 확대됐다. 노 대통령은 대북 포용정책을 이어갔고, 임기 말인 2007년에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10·4 남북공동선언을 채택하기도 했다.
이명박정부 출범 후 통일부는 다시 한번 격랑에 휩싸였다. 2008년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통일부를 폐지하고 외교부 등에 흡수통합하는 안을 발표했다. 이에 야당 등이 크게 반발했고, 결국 통일부 존치를 결정한 대신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그해 전체 정원의 15%에 달하는 80명이 감축돼 총 정원은 470명이 됐다. 대북 안보 업무는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국가정보원으로 넘어갔다. 한 통일부 관계자는 “그때가 통일부의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박근혜정부 때 통일부는 대북협상 주도권을 안보실로 넘겨줬다. 다만 통일준비위원회가 출범한 영향으로 통일부 인력은 2013년 515명에서 2016년 551명으로 증가했다. 남북관계 개선에 총력을 기울인 문재인정부는 인력도 꾸준히 늘려 정권 말기엔 정원이 616명에 달했다.
인력 80여명 줄여 ‘MB정부’로 회귀?…“방향은 달라”
문 차관이 이날 설명한 통일부 조직개편은 80여명의 인력 감축으로 요약된다. 617명인 현재 정원의 13%에 달한다. 인력 감축 규모는 이명박정부 초기와 비슷한 수준이다.
다만 구체적인 변화 방향은 이명박정부 때와 다르다. 이명박정부 때는 북한과의 대화가 단절되지 않았기 때문에 통일부 기능 자체에 변화를 꾀하거나, 산하 조직 및 기관의 역할을 줄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통일부는 그때와 달리 지금은 북한의 고도화된 핵·미사일 위협 속에 남북 대화가 단절된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통일부는 교류협력을 담당하던 조직을 대폭 축소할 방침이다. 교류협력국과 남북협력지구발전기획단, 남북회담본부, 남북출입사무소 등 4개 조직을 통폐합한다. 해당 조직 정원은 148명이다. 통일부는 해당 조직을 합치고, 인원을 감축해 새로운 국장급 이하 교류협력 담당 기관을 만들 계획이다. 통일부 본부에는 교류협력을 담당하는 부서가 아예 사라진다.
대신 정보분석과 인권 분야 기능은 강화한다. 김 장관은 지난 21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정보분석 능력 강화와 북한주민 인권 증진을 통일부의 주요 과제로 꼽았다. 이를 위해 현재 1급 인사 중 6명을 교체하는 등 인적 쇄신에 나선다. 대신 정보분석과 북한 인권 관련 외부 인사 영입으로 전문성을 확대할 방침이다. 인권과 관련해서는 장관 직속으로 납북자, 국군포로, 억류자를 담당하는 납북자대책반도 신설한다.
문 차관은 “남북 간의 대화 교류가 전혀 되지 않는 상황”이라면서 “조직을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조직개편을 검토했다”고 밝혔다. 확정된 조직개편 내용은 행정안전부, 인사혁신처 등 관련 부처와 조율 후 8월 말쯤 발표할 예정이다.
“기능 재조정 필요…어려울수록 결집된 역량은 필요”
전문가들은 통일부의 기능 변화가 필요한 시기는 맞는다고 진단했다. 남북관계는 악화했고 통일에 대한 국민 인식도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통일부 역할을 재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지금 통일부는 통일에 대한 뚜렷한 목표와 정체성이 없기에 통일정책이 많이 흔들린다”면서 “통일부 기능을 근본적으로 재조정할 필요는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대화가 단절된 상황일수록 교류협력을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과 어려운 관계일수록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통일부가 결집된 역량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총장도 “평화통일을 이끄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통일부의 정신”이라며 “통일부는 대화와 교류에 더 방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준상 기자 junwit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