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틴 원액이 섞인 물을 마시게 해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1·2심 연속으로 징역 30년이 선고된 30대 여성 사건에서 대법원이 “살인 혐의 유죄를 확신할 수 없다”며 판결을 파기했다. 여성은 다시 2심 재판을 받게 됐는데, 검찰이 대법원이 제기한 의문을 증거를 통해 해소하지 못하면 무죄가 선고될 가능성이 높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7일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A씨(39)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유죄로 확신하는 것을 주저하게 하는 의문점들이 남아 있다”고 밝혔다.
당초 검찰은 사건이 일어난 2021년 5월 26~27일 A씨가 남편에게 먹였던 미숫가루 음료, 흰죽, 찬물을 유력한 살인 증거로 판단했다. 음식물 섭취 후 남편이 호소한 증상과 받은 응급실 치료, 전문가 의견 등을 종합하면 A씨가 음식물에 니코틴 원액을 타 남편을 살해한 사실이 간접적으로 입증된다고 했다.
A씨에게 다액의 채무와 내연남이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살인 동기도 인정된다고 봤다. 남편의 사망보험금을 받아 내연남과 자유롭게 살려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1심은 검찰이 제시한 미숫가루, 죽, 물을 전부 살인 유죄 증거로 인정해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물만 유죄 증거로 인정하며 1심 판결을 파기했다.
A씨 남편은 26일 밤 죽을 먹고 응급실에 실려갔다가 상태가 호전돼 27일 새벽 집으로 돌아왔었다. 이를 근거로 2심은 “피해자가 미숫가루나 죽을 섭취하고 호소한 증상들은 니코틴 중독이 아닌 식중독 등 다른 원인에 따른 것일 가능성을 합리적으로 배제하기 어렵다”고 했다. 응급실 이송 시 채취됐던 피해자 혈액도 보관 기관 경과로 폐기돼 직접 증거도 사라진 상태였다.
다만 2심은 A씨가 응급실서 귀가한 남편에게 니코틴 탄 물을 마시게 해 살해했다는 공소사실은 유죄로 인정해 징역 30년 형량을 그대로 유지했다.
대법원은 물 부분도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사진기록상 A씨가 남편에게 건넸다는 물컵에는 물이 3분의 2 이상 남아 거의 마시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외 밝혀지지 않은 다른 경로로 피해자가 니코틴을 음용하게 됐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받아마신 물에 니코틴이 함유됐다고 가정할 경우 체내 니코틴이 최고 농도에 이르게 되는 시각 이후까지 피해자가 휴대전화를 이용한 기록이 남은 점도 석연치 않다고 했다.
검찰은 A씨가 평소 피우던 액상담배를 범행도구로 지목했지만, 대법원은 이에 대해서도 “A씨에게서 압수한 액상담배 중 사용분의 니코틴 함량(95㎎)과 피해자의 음용 추정량(약 2400㎎)은 차이가 상당히 크다”고 지적했다. A씨의 액상담배 소지를 범행준비 정황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범행 동기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내연관계 유지나 경제적 이득이 가족관계 등 자신의 기반이 무너지는 것을 감내하더라도 살인을 감행할 정도의 충분한 동기로 작용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