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역사연구가 피터 왓슨의 저서 ‘무신론자의 시대’는 19세기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선언 이후 세계는 신 없이 존재하는 법을 학습해 왔고 지금은 이를 충분히 누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에겐 신이 없는 것이 상식이고 신을 믿는 것이 특별한 것이 됐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우리나라 역시 교회의 성장은 멈추고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현상이 자연스러워지고 있습니다. 과거 초대교회가 그러했듯이, 그리고 각 선교지에서 예수의 이름을 전했던 선교사들이 그러했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인 세상에서 예수의 이름을 전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겁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초대교회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보며 그 당시 사도들이 가졌던 능력을 지금 한국교회가 십분 발휘할 수 있다면 다시 이 땅의 교회에 부흥이 찾아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예루살렘 성전 미문에서 베드로가 그랬던 것처럼 날 때부터 불구였던 사람을 고칠 수 있는 기적이 곳곳에서 나타난다면 많은 사람의 발길을 다시 교회로 돌릴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교회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사도들이 특별한 능력을 발휘한 것은 오순절 처음 성령이 임하시고 난 이후 교회가 세워질 무렵입니다. 그 이후 사도들과 성도들은 전 세계로 흩어져 일반인과 같은 모습으로 살며 닥쳐오는 박해와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출애굽할 때 하나님의 엄청난 능력으로 여러 기적을 보고 홍해를 건넜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산 출발 이후 40년간 광야 생활을 했던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도착해 요단강을 건너 그 땅의 소산물을 먹기 시작했을 때부터 40년 동안 주셨던 만나가 그친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서 스스로 땀 흘리며 또 주변의 환경과 싸우며 살아 나가기를 명령하셨고 그런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생활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오늘 함께 나눈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병자를 고친 그 능력 이전에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부터 걷지 못했던 사람에게 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행 3:6)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자신에게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의 이름에 의지해 이 사람을 도왔던 것입니다. 오늘날 과학과 문명이 극도로 발달하고 무신론이 상식이 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의지해 사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하고 어떤 대화를 나누던 우리는 예수의 이름을 붙들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의 이름 그 자체에 있는 능력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하며 그 이름에 의지해 살아야 합니다.
또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날 때부터 걷지 못했던 사람을 도우려고 했던 사도들의 마음입니다. 베드로가 이 사람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행 3:6)라고 말한 것은, 그 사람이 사도들에게 기대했던 그런 능력은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도들은 이 사람을 도와주려는 마음이 있었기에 그에게 말을 걸고 그를 도왔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 역시 이와 같습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대한 확신이 있고 어렵게 사는 사람을 도울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이 시대 속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의 확신과 긍휼의 마음 그 자체가 우리의 능력이 될 것입니다. 그런 능력으로 이 어려운 시대를 이겨 나가는 주님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심성훈 목사(따뜻한 말씀의 교회)
◇따뜻한 말씀의 교회는 ‘따뜻한 밥상’이라는 3000원의 김치찌개로 세상을 섬기는 식당들 가운데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로(회기역 부근)에 위치한 ‘따뜻한 밥상 외대점’에서 매 주일 예배로 모이는 영적 공동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