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나누는 교회… 이웃과 접점을 넓히다

입력 2023-07-29 03:00 수정 2023-07-30 15:13
많은 교회가 지역 주민을 위해 활짝 열어둔 다목적 공간 사례가 눈에 띈다. 사진은 탁구 동호회 회원이 서울 영등포교회에서 연습하는 모습. 신석현 포토그래퍼

교회 건물은 공간적으로 봤을 때 효율이 떨어지는 곳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한국교회는 여전히 주일을 포함해 새벽예배와 수요예배, 금요예배를 모두 헤아려도 훨씬 더 긴 시간을 교회 공간을 이용하지 않은 채 공실로 비워두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정규 예배 시간 외에도 불을 켜고 지역 주민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교회가 늘고 있다. 본당이라는 이름표를 떼고 지역 행사를 개최하거나 아예 체육관이나 카페 등 교회처럼 느껴지지 않는 중립적 공간을 확대하면서 활용의 효율성을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교회가 자연스럽게 비기독교인도 편안하게 드나드는 문턱 낮은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탁구 동호인’ ‘당근마켓’의 성지

서울 영등포교회(임정석 목사)는 예배가 없는 월, 화, 목요일엔 탁구동호회의 성지가 된다. 교회 9층 300평 규모의 체육관에는 낮부터 저녁까지 수십 명이 몰려와 연습한다. 지난 21일 오후에도 20여명 정도가 구슬땀을 흘리며 탁구를 치고 있었다. 100여명이 등록된 탁구동호회 회원들은 지난해 초부터 무상으로 이 교회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 이곳을 찾는다는 한 회원은 “교회를 다니지는 않지만 교인보다 내가 더 교회에 많이 오는 것 같다”며 웃었다. 같은 공간은 토요일이 되면 농구동호회가 사용한다. 이 교회 봉사위원장 노용래 장로는 “100여명의 탁구동호회 중 등록 교인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교회는 200여평 규모의 2층 카페도 지역주민을 위해 열고 있다. 노 장로는 “원두커피를 무료로 나눠준 지가 2년 정도 됐는데 비용이 조금 부담되긴 하지만 선교 목적으로 꾸준히 운영한다”고 했다.

경기도 용인제일교회 키즈홀에서 열린 필라테스 강좌. 용인제일교회 제공

경기도 용인제일교회(임병선 목사)는 교회의 모든 장소가 중립적 공간이다. 2014년 교회 리모델링 당시부터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대공연장’으로 부르는 본당마저도 지역주민 행사에 내준다. 교회 체육관에서는 인근 어린이집 체육대회가 자주 열린다. 이 외에도 실내풋살장 탁구장 도서관 음악·댄스연습실 등도 항상 열려 있다. 이용객 편의를 위해 무인편의점도 설치했다.

이 교회는 주차장도 개방했다. 특히 야외 주차장은 대형트럭이나 버스 주차장으로 곧잘 활용된다. 너른 공간 덕에 중고거래 서비스인 ‘당근마켓’ 거래도 활발하게 이뤄진다고 한다. 행정 담당 함신영 목사는 “간혹 시설을 망가뜨리거나 담배를 피우는 등 좋지 않은 사례도 있지만 비기독교인들이 교회를 왔다 갔다 하면 복음을 접할 기회가 생기지 않겠느냐”며 “성도들도 교회 공간을 지역주민에게 아낌없이 내어주는 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갤러리·콘서트홀로 바뀐 교회

경기도 안산 꿈의교회에서 지난달 열린 유모차 콘서트. 꿈의교회 제공

30여년 전 ‘레포츠 교회’로 시작된 경기도 안산 꿈의교회(김학중 목사)는 2020년부터 교회를 문화 공간으로 바꿨다. 수영장이던 지하 1층은 다목적홀이 들어섰고 헬스장이 있던 1층에는 키즈카페와 제과점을 열었다. 지난달 10일에는 다목적홀에서 ‘유모차 콘서트’가 열려 많은 주민이 찾았다. 기자가 찾은 지난 19일에는 키즈카페에 아이를 맡기고 제과점에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는 엄마들이 눈에 띄었다.

꿈의교회 1층 갤러리 모습.

갤러리도 교회 1층에 자리하고 있다. 미술품 상시 전시는 물론 어린이 오케스트라 공연장으로도 이용된다. 소그룹회의실은 인근 대학의 학생들을 위해 ‘스터디’ 장소로 조만간 꾸밀 계획이다.

행정 총괄 송화섭 목사는 “교회 내 특정 부서가 공간을 점유하지 않고 더 나아가 동네 주민까지 함께한다”며 “교회는 마을 공동체가 돼야 한다는 담임목사의 목회 철학과도 맞물려 있다”고 설명했다. 송 목사는 “갤러리에는 비기독교인의 작품도 전시되는데 한 작가님이 교인이 되기도 했다”며 “중립적 공간은 결국 선교적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교회 지하엔 대형마트 있어요”

경기도 의정부 사랑과평화의교회 지하 2층에 입점한 마트 전경.

경기도 의정부 사랑과평화의교회(김영복 목사) 지하 2층에는 대형마트가 들어서 있다. 이 때문에 교회는 평일에도 사람들이 붐빈다. 기자가 찾은 지난 20일 오전에도 교회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장바구니를 손에 들고 4층 본당 앞을 지나는 이도 있었다. 장을 본 뒤 건물 반대쪽으로 나가는 이들이었다. 2층에는 초밥집이 입점해 있다. 담임 김영복 목사는 “사람들이 마트를 오가며 지나는 길에 예배당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이냐”며 “그들이 걸어가며 남긴 먼지가 사금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고 말했다.

사랑과평화의교회는 재정 자립과 다양한 공간 활용을 고려해 상업 용지에 새 교회당을 건축했다. 지난해 11월 입당한 새 예배당 옆에는 이전 교회 예배당이 남아 있다. 이 교회 장광수 협력목사는 “30년 가까이 독일에서 목회한 경험에 비춰볼 때 교회는 교회만을 위한 공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한국의 수많은 상가 교회가 재정 자립을 높일 수 있도록 공간 활용에 고민하고 발상을 전환할 때”라고 했다.

교회는 예배당과 크고 작은 공간을 지역주민에게 무상이나 저렴한 비용으로 대여한다. 교회 본당과 소그룹실에서는 피아노 개인 지도를 하거나 공부하는 학생을 수시로 마주칠 수 있다. 김 목사는 “초신자가 편하게 들락날락할 수 있는 교회가 되었으면 한다”며 “예배드리는 시간이 아닐 때는 공간을 나누며 기독교적 나눔을 몸소 실천한다”고 했다.

‘커피숍 2층에 교회 있더라’ 후기가 뿌듯한 이유

서울 신길교회의 대형 카페.

서울 신길교회(이기용 목사) 본당 옆 건물 1층 카페 공간은 일반적인 카페 수준을 초월한다. 180평 규모의 카페 공간은 지역주민조차 교회에서 운영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카페는 교회 정문과 분리돼 외부에서 카페로 직접 들어가는 입구가 3개나 된다. 행정 총괄 박지훈 목사는 “카페 2층에 교회가 있으니 일요일엔 가지 말라는 후기를 보고 우리가 의도한 대로 운영되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지난 18일 오후.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임에도 카페 곳곳에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박 목사는 “3년 전만 해도 이곳은 교회 청년도 오지 않는, 있으나 마나 한 공간이었다”며 “매장 규모를 6배가량 늘리고 인테리어를 바꾸니 사람들이 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카페는 오전 6시부터 늦은 저녁까지 쉬는 날 없이 운영된다.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 공간 역할도 톡톡히 해낸다. 평소 소모임이 가능한 카페 공간의 문은 모두 개방되도록 설계됐다. 코로나19 이전엔 북 콘서트가 자주 열렸다. 일반 카페와 달리 전기 콘센트를 곳곳에 설치해 카페에서 공부하는 ‘카공족’에게도 인기 만점이다.

신길교회는 주차난을 겪는 인근 빌라에 150대 정도의 주차 공간을 내줬다. 이 밖에 코로나 유행으로 주춤했던 본당과 체육관 대여도 다시 준비하고 있다. 특히 1, 2층을 합쳐 3500석에 달하는 본당은 인근 고등학교에서 축제 장소로 여러 차례 사용하기도 했다.

교회에 중립적 공간 왜 필요한가

교회에 중립적 공간이 많아질수록 교회 건물은 주일뿐 아니라 일주일 내내 사람들이 오고 싶은 곳이 된다. 그러나 시설 운영이나 관리라는 현실의 벽을 넘어야 한다. 서울의 한 교회는 아이들이 뛰어놀 운동장이 없는 지역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교회 실외 체육 공간을 어린이에게 개방했다. 그러나 몇몇 주민이 소음을 문제로 신고하면서 운영을 중단했다. 교회 관계자는 “교역자가 생활체육 자격증도 따는 등 준비를 했지만 예상치 못한 일에 부딪혔다”며 “개선점을 보완해 다시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건축가 최두길 야긴건축사무소 대표는 교회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는 지역 주민을 위한 공간을 늘려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 대표는 “한국교회는 예배를 위한 공간이 절대적으로 비율이 높다”며 “교회 안에 다양한 문화공간을 만들어 젊은 세대들이 편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산·의정부=글·사진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