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는 에펠탑, 영국 런던은 빅벤, 미국 뉴욕은 자유의 여신상이 랜드마크다. 랜드마크는 특정 도시를 대표하거나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지형이나 시설물을 가리킨다. 주변에서 가장 쉽게 눈에 띄는 탑이나 조형물 등이 많다. 대한민국 서울의 랜드마크는 N서울타워(남산타워)나 롯데월드타워가 될 수 있겠다.
수원의 랜드마크는 교회다. 화성행궁 인근에 있는 수원제일교회(김근영 목사)다. 수원시가 지난해 제작한 수원시 달력 표지에 이 교회 사진이 실렸다. 모습부터 특이하다. 현대가 아닌 중세에서나 볼 수 있는 고딕 양식이다. 수원의 가운데에 있고 다세대 주택가, 그것도 언덕에 세워져 있어 더 눈에 띈다.
고딕 양식으로 지은 이유
지난 20일 교회로 향했다. 화성행궁 앞 도로를 지나 팔달문을 거쳐 순대골목인 지동시장을 가로지르자 교회가 보였다. 뾰족하게 솟은 첨탑 건물이 금방 시선을 사로잡았다. 가까이 갈수록 건물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하늘로 치솟은 교회의 모습은 보는 이를 압도했다.
교회는 1988년 3대 담임 안중섭 목사가 건축했다. 1953년 18명으로 개척한 교회는 현재까지 6명의 목회자를 청빙했다. 건축 당시에 대한 현 담임 김근영 목사의 설명이다.
“이 교회가 세 번째 건축이었습니다. 안 목사는 교회에 제일 오래 있었고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교단 71대 총회장도 지냈습니다. 그런 만큼 이 교회를 짓기 위해 기도도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그때 두 가지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한강 이남에 영적으로 의미 있는 교회를 세우자’ ‘상징적인 교회를 세우자’ 였습니다.”
교회는 먼저 좋은 모델을 찾았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물색했다. 유럽엔 장로들을 보냈다. 건축 전문가인 한 장로가 유럽을 다녀와서 구상한 모습이 지금의 교회다. 상징적인 교회를 짓고자 하는 국내의 여러 교회가 수원제일교회를 본떠 짓기도 했다.
교회는 지역에 큰 영적 영향력을 미쳤다. 이곳은 수원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중 하나였다. 허허벌판에다 땅이 질퍽질퍽해서 장화를 신지 않고는 걸어 다니기 힘들었다. 하지만 교회가 세워진 이후 달라졌다.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얼마 되지 않아 번화가가 됐다.
“어떤 분이 안 목사에게 그런 질문을 했답니다. ‘왜 이런 후미진 곳에 교회를 세우려 하십니까.’ 그때 그분이 그랬다는 겁니다. ‘두고 봐라. 몇 년 지나면 사람이 가장 많이 다니는 지역이 될 거다.’ 실제로 1980년~90년대엔 삼성 직원들이 월급 타면 몰려오는 곳, 어깨가 스치지 않으면 못 지나갈 정도로 사람이 많았습니다.”
첨탑 꼭대기엔 노을빛전망대
수원의 가운데에 있고 높이 솟아 있다는 것은 수원을 가장 잘 볼 수 있다는 것. 수원화성 인근의 고도제한으로 이 교회가 제일 높다. 그래서 70m 교회 첨탑 꼭대기에 수원 전망대가 생겼다. ‘노을빛전망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수원화성과 더불어 수원에서 가볼 만한 곳으로 꼽힌다.
전망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교회 1층 안내실에 들러 방명록에 이름을 적으면 열쇠를 내준다. ‘노을빛전망대 & 갤러리’라는 안내 표지 옆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까지 올라가면 입구다. 전망대는 11층에 있다.
7층 안내 선간판 옆 하얀색 문을 열고 들어가면 사진 갤러리가 있고 가운데에 원통 계단이 있다. 시멘트 계단을 오르다 철제 계단으로 갈아탄다. 층마다 밝은 청색, 연두색, 주홍색 등 전체 벽면 색깔을 달리했다.
원통 계단을 끝까지 올라 전망대에 서면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수원화성 성곽과 시내가 한눈에 펼쳐진다. 맑은 날엔 안양 용인 화성 분당까지 보인다고 한다. 망원경도 설치돼 있다.
하늘빛 전망대는 수원시가 예산을 들여 2012년에 만들었다. 화성행궁 팔달문 서장대 등 수원화성 성곽길 명소 10곳을 순회 관람하는 스탬프(도장) 투어 프로그램이 있는데 전망대에도 스탬프가 있다. 한 달에 많을 땐 200여명이 방문한다.
교회는 경관 조명 때문에 밤에 더 돋보인다. 조명은 한 성도의 특별 헌금으로 김 목사 때 설치했다. “유럽 교회나 성당은 야간에도 멋있어요. 조명 때문인데 우리도 경관 조명을 하면 어떨까 싶었어요. 알아봤더니 비용이 꽤 나가서 이야기도 못 꺼내고 기도만 했어요. 그런데 한 성도가 찾아와 교회 건물을 개선 보수하는 데 쓰라고 거액을 내놓은 거예요. 최근 새 아파트로 이사했는데 ‘하나님의 집은 오래되고 낡았는데 나만 좋은 곳으로 가면 되겠냐’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경관 조명을 하고 보수하는 과정에서 교회 건물에 102개 십자가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교회에는 첨탑 십자가를 비롯해 건물 지붕 곳곳에 작은 십자가들이 있다. 다들 몇 개인지 몰라 일부러 세어보니 102개였다. 김 목사는 이를 듣고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한라에서 백두까지 십자가 복음을 증거하라는 사명을 주셨구나’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성도들의 자랑 수원제일교회
교회 건물은 수원의 랜드마크이자 성도들의 자랑이다. 교회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게 무엇인지 물었을 때 압도적인 1위가 건물이었다.
“건물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큽니다. 대외적으로 상징적인 건물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런 교회를 허락해 주신 데 대한 감사와 이 교회를 지을 때 드린 기도와 헌신 때문입니다. 가난한 우리 부모 성도들이 눈물로 기도하고 재정적으로 헌신하면서 벽돌을 한 장씩 올렸습니다. 성도들이 직접 벽돌을 머리에 이고 지게로 져서 옮겨 쌓았습니다. 우리 세대가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김 목사는 성도들의 이런 마음을 반영해 교회 로고를 건물 모양으로 만들기도 했다.
수원제일교회는 선교와 섬김으로 교계에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안 목사 때 정한 영구 표어 ‘성장하며 선교하는 교회’를 토대로 양적 성장을 넘은 영적 성숙함을 지향하고 선교에 목숨을 걸고 있다. 선교사 10가정을 파송했고 협력선교사 20여명을 두고 있다. 코로나 중에도 선교사를 파송했으며 최근엔 필리핀 민도로섬에 선교센터를 마련했다. 지역 섬김을 위해서는 아동 돌봄 사역, 장애인 사역, 밑반찬 제공 및 주거개선 등 노인사역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김 목사는 지역 교회로서의 사명을 강조했다. 그는 “수원이라는 단어는 물의 근원이라는 뜻으로 우리 수원제일교회 성도들이 생명수의 진원지가 되길 소망하고 있다”며 “성도들이 교회에서 신앙으로 무장하고 삶의 자리로 나가 생명 되신 예수님을 전하는 것, 이것이 목회자로서 가장 큰 소원”이라고 강조했다.
“기독교는 결국 예수가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위해 끊임없이 몸부림쳐야 하고, 그런 신앙의 생활화가 이뤄질 때 생명수의 진원지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그 역할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도록 항상 기도하고 있습니다.”
수원=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