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25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소추 사건에서 “이태원 참사는 주최자 없는 축제 관련 명확한 매뉴얼과 대응역량 부재, 재난 상황의 행동요령 교육·안내 부족이 총체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판단을 내놨다. 정부 기관 간의 통합적 역량이 부족했던 만큼 참사 책임을 이 장관에게 모두 묻기는 어렵다는 게 탄핵 기각 결정의 핵심 논리다.
헌재는 이 장관이 이태원 참사 발생 이전에 재난관리주관기관을 미리 지정하지 않았다고 해서 법적 책임까지 물을 수는 없다고 봤다. 재난안전법은 다중밀집사고 시 행정안전부 장관이 사후적으로 재난관리주관기관을 지정하도록 돼 있다. 사전 지정 의무가 없는 만큼 미이행에 대한 법적 책임도 묻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회 측은 지난해 10월 29일 핼러윈데이 전후 이태원에 10만명의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하는 보도가 이어졌던 점 등을 들어 이 장관이 위험성을 알고도 예방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헌재는 “당시 보도가 다중밀집사고 자체를 예상했던 것으로 보기 어렵다. 용산경찰서와 용산구청 등도 참사 발생 전 다중밀집사고의 위험성을 이 장관에게 별도 보고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구체적 예방조치를 취하기엔 정보가 충분치 않았다는 뜻이다. 헌재는 이 장관의 사후 재난대응 미흡 부분도 탄핵 사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재난안전법상 재난 현장의 긴급구조활동은 소방·해경 등의 현장 지휘에 따르도록 하고, 행안부 장관 권한에 대한 직접적 규정은 없다.
헌재는 그러면서도 “이 장관이 일상적이고 개방된 공간에서 발생한 사회재난과 그에 따른 인명 피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예방 및 대비 사후 대응의 미흡함을 반성해 정부 재난 대응역량을 보다 강화할 책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김기영 문형배 이미선 재판관은 참사 발생 이후 대응 과정에서 이 장관이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한 것은 맞는다고 판단했다. 이 장관이 참사 발생을 최초 인지한 것은 사고 당일 밤 11시20분이었지만, 이 장관은 경기도 일산에 거주하는 수행비서가 오길 기다렸다가 참사 현장으로 향했다. 현장지휘소에는 이튿날 새벽 1시5분에야 도착했다.
3명의 재판관은 “첫 보고만으로는 인명 피해 규모나 현장 상황을 명확히 판단하기 어려웠다고 해도 심각한 재난이며, 신속한 상황판단이 필요하다는 점은 바로 인지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결국 이 장관은 참사 인지부터 지휘소 도착까지 105분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허비해 국가에 대한 국민 신뢰를 손상시키고, 공무원의 성실의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참사 후 이 장관 발언에 대해서도 세 재판관과 정정미 재판관은 공무원의 품위 유지 의무 위반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이미 (구조) 골든타임이 지났었다’ ‘과거 대비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인파가 모인 것은 아니다’ 등 발언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는 데만 연연하는 언행이고, 국민에게 참사 발생 원인을 오인하게 하는 신뢰 실추 행위”라고 비판했다.
다만 이들 재판관도 “해당 법 위반 사항들을 헌법 질서에 해악을 미칠 정도의 중대한 위반 사례로 볼 수는 없다”고 했다. 결론은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한다”였다.
헌재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서도 노 전 대통령 발언이 공직선거법 위반에 해당하지만, 중대한 법 위반은 아니라며 청구를 기각했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