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휴가철이다. 일에서 벗어나 또 다른 무엇인가를 실행하고 낯선 곳으로 떠난다면 그것 자체로 멋진 휴식이 될 것이다. 멀리 여행하는 것도 좋겠지만 도심에서 기독교 영성을 발견해 보는 건 어떨까. 3회에 걸쳐 ‘여기로 떠나보세요’를 소개한다.
한국정교회(대주교 조성암 암브로시오스) 총본산인 서울 마포구 성 니콜라스 대성당은 서울서부지방검찰청 뒤편 골목 안쪽에 있다. 한국정교회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소속 회원 교단으로 이곳 대성당은 세계 기독교 역사에 관심 있는 개신교 목회자와 성도가 두루 찾는다.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푸른 돔(dome)이 도드라진 성당을 찾을 수 있다. 1968년 비잔틴 양식으로 건축된 성당은 그리스나 튀르키예 특유의 고색창연한 느낌을 풍긴다.
그리스와 슬라브 문화 스민 공간
방문객을 가장 먼저 반기는 건 성당 이름에도 반영된 성 니콜라스의 이콘(Icon·성화)이다. 빈곤 아동에게 선물을 준 12세기 주교로 산타클로스의 기원으로 알려졌다. 성당에 들어서면 천장과 벽면의 이콘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돔 천장 정중앙에 그려진 예수 그리스도엔 ‘만물의 주관자’란 글자가 한글로 적혀 있다.
최근 만난 성당 주임사제 임종훈 신부가 이콘을 설명하던 중 돌연 질문을 던졌다. “정교회는 성경에 나온 내용만 이콘으로 그립니다. 그렇다면 이콘에 하나님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대답을 망설이자 그는 “다들 어려워하는 질문인데 삼위일체 하나님 중 육신을 입은 예수님만 인간의 형상으로 그린다”고 말했다. 신구약을 통틀어 성부 하나님의 얼굴을 본 사람이 없어서다. 성령 하나님은 신약성경대로 비둘기나 불의 혀 형태로 표현한다.
대성당과 마당의 종루가 그리스와 튀르키예를 방문한 느낌을 준다면 성당 지하 ‘성 막심성당’은 슬라브권 향기가 전해진다. 이곳엔 지난 5월 한국정교회가 그리스 예술작품 복원가를 초빙해 작업을 거친 18~20세기 러시아와 그리스에서 들여온 고서와 성찬용 집기 등이 전시돼 있다.
1997년 축성한 이곳에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출신 성도가 함께 예배드린다. 두 나라는 전쟁 중이지만 성도들은 한데 모여 평화를 갈구하고 있다. 임 신부는 “국가 분열에도 개의치 않고 주님을 찬양하는 것, 그것이 예배의 참모습”이라고 했다. 한국정교회는 성당 투어와 예배 현장을 일반에 개방하고 있다. 그는 “편히 오셔서 이채로운 건물뿐 아니라 4세기부터 내려오는 초대교회 전통도 체험해보라”고 전했다.
도시 한복판에서 만나는 영국
한옥 기와에 로마네스크 양식이 더해진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의장주교 이경호) 서울주교좌성당 역시 이국적 자태를 뽐낸다. 관광 명소로도 유명해 2007년 개방 이래로 매년 2만여명이 방문한다. 붉은 벽돌에 화강암이 어우러진 성당은 영국 건축가 아서 딕슨이 설계한 것으로 1922년 착공해 1996년 완공했다. 자금 조달 등의 문제로 원안대로 지어지지 못해 70여년 뒤 완성했다.
십자가 형태로 건립된 성당에 들어서면 반원형 제단의 모자이크 벽화가 한눈에 들어온다. 영국 미술가 조지 잭이 제작한 제단화(祭壇畵)로 맨 위엔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 8:12)라고 라틴어로 적힌 성경을 든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정창진 종신부제는 “매일 오전 6시, 정오, 오후 6시 3번 울리는 종에 호기심을 보이는 방문객이 적잖다”며 “영국 존테일러사가 1926년 제작한 종인데 지금껏 제 역할을 한다. 높은 종탑에 걸린 덕에 일제 공출도 피했다”고 덧붙였다.
성당 익랑(翼廊) 한쪽엔 6·25전쟁에서 전사한 영국군을 위한 추모공간이 있다. 6·25전쟁 순교자 기념 조형물과 6·10민주화운동 기념비 등에선 한국의 근현대 역사도 만날 수 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