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한 아파트 상가에 자리한 에덴정원교회(정진훈 목사)엔 명패 두 개가 달렸다. 하나엔 교회 이름이, 다른 하나엔 ‘행복을 나누는 마을카페 다락’이라고 적혀있다. 입구 쪽 벽면을 전면 거울과 먹색 미닫이문으로 꾸민 교회로 들어서면 여러 목제 책상이 반듯이 놓인 아늑한 공간이 나온다. 장의자가 대부분인 여타 교회 예배당과는 다른 모습이다.
“주민이 많이 찾는 날엔 책상을 지금과 다르게 배치합니다. 여기서 10여개 지역 동호회 활동이 이뤄지거든요.”
최근 교회에서 만난 정진훈 목사의 말이다. 2010년 교회를 개척한 정 목사는 명실상부한 ‘마을 문화 기획자’다. ‘고양동 주민자치회 문화교육분과장’ ‘고양동종합복지회관 컴퓨터 강사’ 등 마을 관련 직함도 여럿이다.
그가 15년에 565㎡(171평) 규모로 시작한 다락은 마을 카페이자 예배당으로 쓰이는 ‘마을 공유공간’이다. 마을 공동체 거점으로 자리 잡은 다락에서는 어린이·성인 대상 강의와 동호회 모임, 주민 간담회 등 각종 지역 행사가 열린다.
마을 성장을 응원하는 교회
13년 전 연고 하나 없던 이곳에 정 목사가 교회를 개척한 건 다름 아닌 꽃씨 때문이다. 부교역자 사임 후 다음 사역지를 놓고 기도원에서 21일간 금식 기도하던 중 얻었다. 무심코 ‘이 꽃씨를 뿌릴 땅을 달라’고 기도한 그는 기도원을 나서는 날 주변에서 ‘고양동에 산으로 둘러싸인 땅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기도를 마치자마자 나타난 그 땅이 하나님 응답처럼 느껴졌습니다. 가보니 골짜기에 숲이 우거져 꽃 심고 정원 가꾸기 적합하겠더군요. 그때 ‘이곳을 전원교회로 가꿔 에덴동산 같은 공간을 만들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0년 4298㎡(1300평) 규모의 버려진 땅을 임대한 정 목사는 굴착기 운전기능사도 따며 땅을 개간했다. 정원을 가꾸는 동시에 그가 힘쓴 건 지역사회 현안 파악이다. 마을 문제를 알아야 교회가 주민과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당시 정 목사가 지역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판단한 건 ‘청소년 봉사 프로그램’이다. 이듬해 출범한 ‘높은빛 청소년봉사학교’는 현재까지 매달 지역 독거 어르신 섬김뿐 아니라 벽제천 정화 활동 등 여러 봉사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정작 예배당은 뒤늦게 마련했다. 첫 예배처소는 정원에 세운 165㎡(5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다. 반구(半球) 형태의 돔으로 ‘싸고 튼튼하되 아름다운 건물’을 추구하던 그가 직접 지었다. 현재 이곳은 교회 정원이자 마을 공동체 주말 농장 등으로 쓰인다.
마을에도 삶에도… 해답 제시하는 교회
교회의 마을 사역은 14년 ‘행복한 고양동 만들기 협의회’를 꾸리면서 본격화됐다. 맘카페와 지역 예술인 등으로 구성된 협의회는 수요조사 후 마을에 필요한 문화 활동을 자체 기획했다. 마을 동호회와 벼룩시장, 공동체 정원과 작은 음악회 등이다. 고양시 공모사업으로 추진한 이들 행사에 대한 주민 반응은 뜨거웠다. 교회는 이후 협의체와 협력해 ‘어린이 농부학교’ ‘함께 배움터’ 마을공방연합회 ‘팀아트높빛’ 등을 운영하며 지역주민과 소통하고 있다.
성도와 지역주민의 후원에 힘입어 현 예배처소인 다락을 세운 것도 이들 프로그램과 무관치 않다. 주민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모일 공간의 필요성이 대두돼서다. 코로나19 사태로 모임이 잠정 중단되면서 한산해졌던 다락은 엔데믹을 맞은 올해 하반기부터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교회가 마을 사역에만 집중하는 건 아니다. 지역 어린이를 대상으로 기독 가치관을 교육하는 ‘씨앗교실’ ‘토요열매학교’ ‘성품캠프’도 진행한다. 일명 교회와 마을을 잇는 ‘징검다리 사역’이다. 여기엔 교회를 안 다니는 어린이가 더 많이 참석하는 만큼 정직 성실 등 성경이 강조하는 가치를 쉽게 설명하고 관련 체험·활동을 하는 데 주력한다. 그는 “마을 사역에 참여한 학부모는 성도가 아니어도 교회 프로그램에 편히 자녀를 보낸다. ‘여기서 하는 거라면 자녀에게 유익할 것’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며 “마을 사역으로 쌓인 신뢰가 교회 문턱을 낮춰주는 셈”이라고 했다. 어린이·청소년을 포함해 30여명이 마을 사역과 징검다리 사역으로 교회에 정착했다.
복음에 희망이 있습니다
정 목사가 마을·징검다리 사역에 힘쓰는 건 신뢰도 추락 중인 한국교회에도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그는 12년 지역 맘카페에 올라온 한 게시물을 잊지 못한다. 해당 게시물엔 “문고리에 ‘교회 창립기념일 축하 기념’ 떡이 걸려있는데 먹어도 되느냐”는 질문이 담겨있었다. 댓글엔 ‘세상도 어수선한 마당에 교회에서 줬다니 그냥 버리라’란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정 목사는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당할 분이 아닌데. 교회가 정말 책임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어 “지역 교회는 한국교회의 생장점 아닌가. 복음을 품고 마을과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건강한 교회 상(像)을 지역사회에 보여줄 책임이 있다고 느꼈다”고 했다.
교회는 앞으로도 마을 공동체와 동고동락하며 지역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자 노력할 계획이다. 정 목사는 “희망은 복음 안에 있다. 각자의 필요에 맞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지 고민한다면 초창기 한국교회 때처럼 다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양=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