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10년간 처분하지 못하고 방폐장에 쌓아두고 있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숫자가 3000드럼(200ℓ 기준)을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 제대로 된 방폐물 처리 계획이나 처분 기술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신규 원전 건설을 앞두고 하루빨리 방폐물 처분 로드맵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3일 방폐장 운영을 전담하는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의 ‘처분시설 장기보관 미처분 방폐물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으로 3~10년 가량 장기 보관 중인 중·저준위 방폐물은 모두 3129드럼으로 집계됐다. 현재 원전 작업 과정에서 나온 덧신·작업복을 포함한 중·저준위 방폐물은 경북 경주에 있는 방폐장에서 보관·처리하고 있다.
가장 오랫동안 보관 중인 방폐물은 폐아스콘(1496드럼)이다. 2011년 서울 노원구 월계동 도로에서 평균치 이상의 방사선이 검출됐는데,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도로를 짓는 데 사용된 아스팔트 콘크리트(아스콘)에 방사성 물질이 부적절하게 유입된 것으로 판단했다. 이 폐아스콘은 2012년과 2014년 두 차례 경주 방폐장으로 이송됐지만 10년 넘게 처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원자력발전소와 상관없는 폐아스콘이 장기 보관 방폐물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공단은 지난해 폐아스콘 방폐물의 밀도나 유기물 함량 등을 분석하는 특성조사를 계획했지만 예산 문제로 이를 연기했다. 이후 지난 4월에야 방폐물 처분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용역 절차에 착수했다. 정부는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폐아스콘 처리 로드맵을 수립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특성조사에 필요한 예산은 부족한 상황이다. 공단은 보고서에서 “신규 사업비 확보가 어려워 올해 잔여 예산을 활용할 것”이라고 했다. 만약 올해 사업비가 남지 않는다면 폐아스콘이 계속 방치될 가능성도 있다.
원자력발전소 등에서 나온 방사성 동위원소(RI) 폐기물도 2015년부터 방폐장에 쌓이고 있다. 820드럼이 보관 중이다. 아직 정부는 RI 폐기물 처리 기술을 개발하지 못했다. 2026년 관련 연구를 마무리할 계획인데, 그때까지 RI 폐기물 처리 과정은 ‘올스톱’된 상태다. 시멘트와 접촉할 때 안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이유로 현재 반입 중지된 셀룰로오스 방폐물(566드럼)은 처분 용량 제한치가 확정되는 내년 3월 이후에야 본격적인 처분이 이뤄질 전망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내년 수립하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포함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다만 고준위 방폐장은 아직 후보지도 찾지 못했고, 중·저준위 방폐물 처리까지 난항이 예상되면서 정부가 폐기물 대책부터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재학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앞으로 발생할 방폐물 처리는 사전에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며 “연구·개발 예산 등을 투자하는 방식으로 폐기물 관리 사각지대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