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번영의 상징이던 베네수엘라 유전이 농토와 숲, 공기를 오염시키는 환경 주범 노릇을 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베네수엘라는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를 주름잡던 산유국이었다. 세계 1위인 3030억 배럴 매장량으로 땅을 살짝만 파도 원유가 펑펑 솟구쳤다. 또 카리브해와 가까워 석유를 미국에 직접 수출할 수 있었다.
번영의 시간은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이 사망한 2013년을 계기로 급격히 사라졌다. 차베스의 후계자를 자처한 니콜라스 마두로 현 대통령은 석유를 채굴·정제·생산하던 외국 정유사를 다 쫓아내고 유전 전체를 국유화했다.
그러자 석유 산업은 급격히 퇴락했다. 유전이 아무리 많아도 원유 정제 기술을 가진 국내기업은 없었다. 중동 산유국처럼 석유로 벌어드린 국부를 다른 산업에 재투자해 경제 체력을 갖추고 있지도 못했다. 석유 수입을 국민에게 나눠주는 ‘석유 사회주의’ 포퓰리즘으로 흥청망청 써버린 것이다.
여기에 미국이 폭정을 휘두르는 마두로 정권에 강력한 경제 제재를 부과하면서 원유 그대로를 팔 수 있는 통로도 막혔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악의 인플레이션 국가이자 통화가치 하락 국가로 전락했고, 유전은 생산원가가 판매가격보다 더 비싸지자 방치돼 폐허가 됐다. 10년 이상 방치된 이 폐유전들이 이제는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다.
흘러나온 원유가 주변 지역 토양을 오염시켜 폐유전 주변의 광활한 농지는 쓸모없는 땅으로 변했다. 폐유전 화재가 자연 발화로 끊이지 않고 발생해 시커먼 잿빛 공기가 전국 곳곳을 뒤덮는다.
NYT는 “석유만큼 유명했던 베네수엘라 커피와 바나나는 이제 ‘잿더미 커피’ ‘석유 바나나’가 됐다”면서 “토양에 밴 원유가 바나나 나무를 오염시키고, 바람을 타고 날아간 석유 잿가루는 고원지대의 커피농장을 마비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