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을 비롯한 지중해 연안에서의 결혼은 개인의 선택과 무관했습니다. 결혼 당사자가 아닌 가장이나 보호자가 주관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결혼은 가족과 사회를 보존하려는 효과적인 장치에 불과했습니다.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결혼하고 자식을 낳는 게 조상신을 섬기는 행위이며 폴리스에 속한 시민이라면 당연한 의무였습니다. 남녀 간 결합으로 가정이 유지되고 순수한 혈통을 보존할 수 있다는 게 아테네인들의 고정관념이었습니다. 제정시대 로마는 내전으로 결혼문화가 계속 황폐해지자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직접 나서 결혼에 관한 법령을 제정할 정도로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성경 시대 결혼은 오늘날과 달리 핑크빛 낭만과 상당한 거리가 있었습니다. 남녀의 사랑은 결혼을 위한 필수조건이 아니었습니다. 혼인으로 신랑과 신부 가문은 강력하게 결속할 수 있었습니다. 결혼으로 사내가 남편으로, 소녀가 아내로 변모해가는 과정은 개인이 아니라 가족 전체의 문제였습니다. 아내는 동일 혈통일 때가 많았는데 가문의 약화를 막아보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결혼은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결혼과 관련된 구체적 정보를 성경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결혼 서약을 어떻게 하고 복장은 어땠는지, 결혼반지를 교환했는지, 베일을 착용한 신부 모습은 어땠는지 성경은 일절 언급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무관심은 결혼을 이성끼리의 결합보다는 일종의 사회적 계약으로 간주한 데 따른 결과였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결혼으로 설명하는 에스겔의 발언은 이런 분위기를 전제합니다. “내가…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를 내게 속하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겔 16:8) 그러니 결혼식 참석자들은 당연히 신혼부부의 사랑을 묻지 않았습니다.
성경 시대에는 독신생활을 긍정적으로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는 가정을 꾸리지 않았으나 예언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려는 드문 사례였습니다.(렘 16:2) 이런 예외적인 독신생활에는 타고난 무엇이 존재해야 가능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조언 역시 독신생활의 예외성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고전 7:8) 정상적인 성인이라면 마땅히 결혼해야 한다는 게 성경 시대의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이었습니다. 이것이 강화되어 구전 토라의 전통을 따른 탈무드는 “아내가 없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규정합니다.
개인보다 가족이 앞선 결혼이었지만 뜨거운 사랑이 없지 않았습니다. 첫눈에 반해 7년의 노동을 며칠처럼 여긴 야곱의 사랑은 열병 자체였습니다.(창 29:20) 세상을 떠난 뒤에도 야곱의 사랑은 여전해 라헬의 자식에게 전해집니다. “마음 깊이 야곱의 딸 디나에게 연연하며 그 소녀를 사랑”(창 34:3)한 세겜이나 소렉 출신 들릴라를 사랑한 삼손이 치른 대가는 비극적 죽음이었습니다. 누구도 두 사내의 열정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사랑에 눈먼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고, 아도니아는 늙은 아비 다윗 곁을 지킨 아비삭을 연모해 목숨을 잃었습니다.(왕상 2:25) 어린 약혼녀 마리아를 보호하려는 요셉의 사랑은 아가서의 연인만큼 간절했습니다. 한마디로 요셉의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불길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아 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