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예천군 호명면 황지리 내성천에서 실종자 수색 중 급류에 휩쓸렸다 숨진 채 발견된 해병 채수근(20) 상병은 한평생 국가에 헌신한 소방관의 외동아들이자 한 집안의 장손이었다. 고향이 전북 남원인 채 상병은 전주에서 대학에 다녔고 1학년을 마친 뒤 지난 3월 해병대에 입대해 통신 주특기교육을 마치고 5월 자대로 배치받았다.
해병대 1사단 포병대대 소속인 채 상병은 지난 19일 오전 9시3분쯤 내성천 보문교 일대에서 동료 대원들과 수해 실종자 수색 도중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고 끝내 시신으로 발견됐다.
채 상병의 부친(57)은 전북도소방본부에서 27년을 몸담은 소방관이다. 결혼 생활 10년 차에 시험관 시술 끝에 어렵게 외아들을 품에 안았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현직 소방위로 남원지역 안전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사명감이 투철해 주위에서 높이 평가한다고 소방 당국은 전했다.
채 상병의 빈소가 차려진 20일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 김대식관에서 모친은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을 붙잡고 “우리 아들 이렇게 보낼 수 없어요. 왜 이렇게 우리 아들을 허무하게 가게 했어요”라고 오열했다. 모친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는데 왜 일 터지고 이렇게 뒷수습만 하냐.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요”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채 상병 가족과 이웃 공모씨는 “채 상병은 대학을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도 운동한다며 30분 정도 걸어서 다녔다”며 “자대 배치를 받은 뒤 며칠 전에 어머니 생일이라고 쇠고기를 보내는 등 흠잡을 데가 없는 아들이었다”고 말했다.
채 상병 부모는 전날 사고 소식을 접하고 전북 남원에서 경북 예천까지 245㎞ 거리를 한달음에 달려왔다. 아들이 실종된 지점에서 부친은 해병대 중대장을 향해 “구명조끼 입혔어요? 입혔냐고. 왜 안 입혔냐고요. 그게 그렇게 비싸요”라고 하다가 “지금 물살이 이렇게 센데,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라고 했다.
채 상병은 실종 14시간여 만인 19일 밤 11시10분쯤 내성천 고평교 하류 400m 지점에서 발견됐다. 이후 태극기에 몸이 덮인 채 전우들의 경례를 받으며 해병대 헬기에 실려 포항으로 이송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순직을 진심으로 애도한다. 국가유공자로서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도록 하겠다”며 “유가족분들과 전우를 잃은 해병대 장병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해병대는 고인을 일병에서 상병으로 추서했다. 해병대는 “호우 피해 복구 작전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순직한 해병대원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채 상병 빈소에는 일반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이철우 경북도지사 등도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영결식은 22일 해병대 1사단 도솔관에서 열린다. 채 상병 유해는 전북 임실 호국원에 안치된다.
예천=김재산 기자, 포항=안창한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