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김모씨는 자가운전을 시작한 지 6년여 만에 처음으로 차량에 비상탈출용 망치를 뒀다. 김씨는 충북 청주시 오송 지하차도 참사 소식을 접하고 탈출장비 구비를 결정했다고 한다. 그는 19일 “내가 겪은 일이라고 생각해보니 앞이 캄캄했다. 내 차엔 창문을 깰 수 있는 도구 등이 아예 없더라”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에 사는 이모(30)씨도 이번 참사 이후 주변 지인들이 걱정돼 비상탈출용 도구를 여러 개 장만했다. 이씨는 “자동차는 있어도 그 안에 비상탈출용 도구를 준비해 두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최근의 물난리를 보고 운전하는 친구들이 걱정돼 구매하게 됐다”고 했다.
최근 집중호우로 침수 사고 등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차량 탈출 비상키트를 구매하는 시민이 늘고 있다. 비상키트는 차 유리창을 깰 수 있는 망치와 안전벨트를 자를 수 있는 칼 등으로 구성돼 있다. 비상 탈출용 도구를 파는 한 업체는 평소 하루 100여건 들어오던 주문이 지난 17일 기준 2000건 이상으로 20배 넘게 급증했다. 18일에도 1000여건의 주문이 접수됐다고 한다. 업체 관계자는 “매년 여름철이 되면 주문량이 늘긴 했지만, 이 정도 수준은 아니었다. 최근 침수 참사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언제 어디서 침수 사고를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작용한 영향이 크다. 사전 위험 징후에도 관계기관의 미흡한 대처로 대형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서 ‘정부만 믿을 수는 없다’는 인식이 퍼진 것도 한몫했다. 한 비상키트 구매자는 후기에 ‘이번에 사고가 난 것을 보고 구매했다. 쓸 일은 없기를 바란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김모(30)씨도 “작년 이태원 참사에 이어 오송 지하차도 참사를 보면서 결국 재난 현장을 맞닥뜨렸을 땐 ‘내가 나를 지켜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자동차 침수 피해 예방법’이나 ‘차량 침수 시 행동요령’ 등에 관한 관심도 크게 늘었다. 행정안전부는 집중호우로 차량 침수가 발생했을 때 목 받침대 지지봉, 안전띠 체결장치, 비상탈출용 망치 등으로 창문 모서리를 깨도록 안내하고 있다. 최근 비상키트를 구매한 박모(33)씨는 “국민재난안전포털에 나온 내용을 숙지하려 했는데, 운전자들 사이에서 망치를 제외한 다른 도구는 현실적으로 사용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차에 물이 차오르고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순간에 목 받침대를 뽑을 여력이 있겠나. 그래서 키트를 구매했다”고 말했다.
시내버스 회사들도 운전기사를 상대로 긴급상황 대처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는 지난 17일 전국 17개 회원사에 협조 공문을 보내 운전기사들이 비상시 탈출요령과 상황 대응 매뉴얼, 관계기관 연락처를 숙지하도록 요청했다. 한편 이번 주말 다시 폭우가 예고되면서 서울시는 관내 117개 지하차도에 대한 특별 점검을 벌이기로 했다. 점검 대상은 지하차도 내 배수로, 차단시설, 펌프 침수 감시 장치 등이 될 전망이다.
김재환 백재연 기자 j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