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에 생긴 미국 부모님… 기적같은 축복 나눕니다”

입력 2023-07-20 04:03
줄리 듀발 LBTO 대표가 최근 서울 서대문구 사무실에서 사랑을 상징하는 하트 모양의 소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지훈 기자

가족이 없는 이들에게 명절은 외로움이 최고조에 달하는 때다. 2016년 한국의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 지원을 위해 설립된 비영리민간단체(NPO) LBTO(Love Beyond the Orphanage ·보육원 너머의 사랑)는 매년 설날과 추석에 자립청년들이 따뜻한 명절을 보내도록 만남의 장을 마련한다. 미국에 본부를 둔 LBTO의 설립 취지는 ‘자립청년에게 계속 사랑을 전하는 것’이다.

매년 명절에 뭉치는 자립청년들

명절에 모인 자립청년들과 LBTO 관계자, 봉사자들은 윷놀이 등 전통놀이를 하고 명절 음식을 나누면서 여느 가족처럼 친밀한 시간을 보낸다. 명절 행사는 LBTO가 설립된 이듬해부터 시작돼 팬데믹 시기에도 거르지 않았다. LBTO가 명절 모임에 정성을 들이는 이유가 있다. 줄리 듀발(60) LBTO 대표를 비롯해 150여명의 LBTO 후원자들 대부분이 한국인 출신 해외입양인으로 자립청년의 아픔을 깊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미국에 거주 중인 듀발 LBTO 대표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다양한 자립청년 지원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 서울 서대문구 LBTO 사무실에서 만난 듀발 대표는 “가족이 없는 이들에겐 생일과 명절처럼 특별한 날도 의미가 없다. 혼자라는 사실에 많이 외로웠던 기억이 난다”며 “명절 모임을 통해 자립청년들이 따뜻한 공동체를 경험하고 자유롭게 웃길 소망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설날 모임 땐 40여명과 단란한 시간을 보낸 그는 오는 9월 추석에는 고급 숙소에서 자립청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단체로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LBTO 제공

‘기적’ 같은 입양, 새 삶의 출발

듀발 대표는 스물 네살 때인 1987년 미국 가정에 입양됐다. 그는 입양 전후로 자신의 삶이 크게 바뀌었다며 입양 사건을 ‘기적(miracle)’으로 표현했다.

“입양 전에는 외로운 시간이 많았고 좋은 기회라는 단어는 제 삶에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아무리 성실하게 일해도 그만큼 대우받지 못하는 현실에 화도 많이 났어요.”

어릴 때부터 보육원에서 성장한 그는 16살 때 보육원을 퇴소했다. 이후 여러 가정을 전전하며 가정부 생활을 한 그는 어렵게 서울상업전문학교를 졸업했다. 홀트일산센터에서 3년간 장애인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다 늦은 나이에 입양이 된 희귀한 사례의 한국계 미국인이다.

“스무살 이후 입양은 거의 불가능한데 저의 경우는 ‘신데렐라’ 이야기라고 할 수 있죠. 입양 후 양부모님이 보호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 신기했고 행복했어요. 매사에 소심하고 부끄러움이 많았는데 든든한 가족이 있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생겼죠.”

입양 이래 미국홀트입양회 직원으로 일해온 그는 변호사인 백인 남성과 결혼해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꾸렸다. 여러 상처와 아픔으로 점철된 한국에서의 삶은 점점 잊혀 갔다.

2016년 그는 좋은 가정에 입양돼 받은 축복을 나눌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의 마음을 가장 끌리게 만든 이들은 한국의 자립청년들이었다. 자신처럼 미국에 입양된 킴벌리 헨슨씨와 의기투합해 LBTO를 설립했다. 자립청년들이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고 싶었다.

“자립청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들이 안전하고 성공적인 길을 가도록 함께 응원해주는 멘토입니다. 보육원을 퇴소해 홀로서기를 시작한 이들은 두려움과 고립감이 가득한 상태에서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고 부딪쳐야만 해요. 재정적 어려움보다 세상에 홀로 있다는 외로움이 더 크게 다가올 것입니다.”

출신 배경보다 개인 역량으로 봐주길

지난달 서울 중구 서울유스호스텔에서 LBTO 주최로 열린 장학생 워크숍에서 단체 게임을 하는 자립청년들. LBTO 제공

LBTO는 자립청년의 진정한 자립을 위한 장학금 지원, 워크숍, 멘토 프로그램 등을 진행한다. 자립청년과 미국에 있는 입양인 또는 입양인 가족과 1대1로 연결해 펜팔 등을 할 수 있도록 다리 역할도 한다. 매년 장학생을 위한 워크숍을 열어 이들에게 필요한 기술 등을 전수하고 장학생끼리 네트워크를 형성하도록 한다. 지난 1월 자립청년과 함께하는 여러 단체와 연대해 주택·금융 등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는 박람회를 열었다.

“자립청년들이 긍정적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조건 없이 도와주고 자신에게 관심 갖는 이들이 있다는 생각에 신기해하며 좋아합니다. 만날 때마다 좋은 이야기를 하며 격려해주니 자신감을 회복한 이들도 많고요. 사명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런 반응을 볼 때 보람을 느낍니다.”

듀발 대표는 자신이 고아로 냉대받던 한국 사회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했다. 자립청년이 출신 배경보다 개인 역량에 따라 평가받는 날이 오길 기대했다.

“한국 사회가 자립청년들이 고난과 외로움의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옆에서 지켜주세요. 이들을 대할 때 고아라는 편견으로 보지 않고 인간적으로 대우해준다면 삶이 힘들어도 마음은 안전하지 않을까 싶네요. LBTO는 한국 사회가 자립청년을 출신 배경보다 개인 역량으로 바라보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