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호우로 산사태 피해가 발생한 경북 대부분 지역이 ‘산사태 취약지역’에 지정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정부의 산사태 관리 및 대책에 구멍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7일 경북도 등에 따르면 최근 산사태로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경북 예천·봉화군과 영주·문경시 등의 10개 마을 중 실제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된 곳은 영주시 풍기읍 삼가리 단 1곳뿐이었다.
산사태 취약지역은 집중호우나 태풍 등으로 산사태가 발생해 인근 주민에게 피해를 줄 우려가 있는 곳을 지정해 관리하는 제도다. 2011년 서울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 이후 피해를 줄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산림청 기초조사와 지방자치단체 실태조사, 전문가 검증 등을 거쳐 위험도를 4개 등급으로 분류한 뒤 위험이 크다고 판단한 1~2등급에 해당하는 곳을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해 관리한다.
그러나 최근 일어난 산사태 상당수는 이번에 인명 피해가 집중된 예천군 사례처럼 산사태 취약지역이 아닌 곳에서 발생했다. 2020년 8월 일가족 3명이 사망한 가평 펜션 산사태 역시 산사태 취약지역과 떨어진 곳이었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우면산 산사태 이후 10년 동안 산사태가 난 곳을 다녔는데 열에 아홉은 산사태 취약지역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도로 확장, 택지 개발 등 인위적 공사가 이뤄진 지역들이 산사태 취약지역에서 제외되다 보니 실제 현장과는 괴리가 생긴다고 입을 모았다.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학과 교수는 “산사태 취약지역에 절개지가 빠지는 등 선정 과정에서 실효성 없는 요소가 많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경사가 급한 곳, 절개지가 있는 곳, 밑에 물길이 있는 곳 등이 가장 위험하다”며 “실질적으로 여기에 맞춰 산사태 위험 평가 방법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예측 자체가 어려운 산사태 특성을 고려해 대피 중심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문현철 숭실대 대학원 재난안전관리학과 교수는 “산사태 특성상 완벽한 예측이 어렵기에 비가 오면 일정 강수량을 기준으로 일괄적으로 (주민들을) 대피시켜야 한다”고 했다.
김만일 산림조합중앙회 박사도 “이번 같은 강우 패턴이나 누적 강우량은 산지 지반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초월한 수준”이라며 “집 뒤에서 흙탕물이 흘러 내려오거나 돌이 굴러떨어지면 지반이 견딜 수 있는 임계치를 넘어선 징후로 보고 우선적으로 대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윤수 기자 tigri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