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다 포기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실낱같은 희망 따위는 진작에 버렸습니다.”
17일 충남 청남면 인양리 인근 논은 이틀 전 발생한 지천 제방 붕괴로 여전히 빗물에 잠긴 상태였다. 주변으로 무너진 비닐하우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60대 주민 A씨는 비닐하우스 복구작업을 지켜보던 중 울음을 터뜨렸다. 마구 흐트러진 농작물과 여기저기 부서진 비닐하우스 뼈대 사이에서 챙겨나갈 수 있는 것은 고작 호미와 낫이 유일했다. 그는 “일대가 전부 물에 잠겨 어디가 논인지 길인지 분간조차 힘들다”며 “물이 빠지고 복구가 되더라도 그동안 농사 지은 것은 전부 다 망쳤다고 봐야 한다”고 토로했다.
산사태가 발생한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의 70대 주민 B씨도 불안한 표정으로 복구 현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직접 삽을 들고 무너진 집 주변을 살펴보던 B씨의 손에는 진흙으로 뒤덮인 그릇만 들려 있었다. B씨는 “몇 시간째 땅을 파고 찾아봐도 멀쩡하게 남아 있는 것은 이 그릇뿐”이라며 “밥솥은 망가졌고 라면을 끓일 냄비조차 없다”고 말했다.
전국 곳곳에서 사흘간 이어진 폭우에 피해를 본 주민들의 한숨 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날 가늘어진 빗줄기를 틈타 복구작업이 이뤄지는 곳도 있었지만 처참한 현장 또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면서 피해 주민들의 속만 태웠다.
괴산댐 월류로 대피까지 해야 했던 충북 충주시 대소원면 주민들은 한때 빗물이 가득 차올랐던 집을 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물이 빠진 뒤에도 집 안을 가득 채운 진흙에 이들은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주민 C씨는 “복구가 이뤄지더라도 제대로 남아 있는 게 없으니 앞으로 살길이 정말 막막하기만 하다”고 호소했다.
일부 지역은 앞으로도 비가 더 내릴 것으로 보여 빠른 복구작업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금강 하류에 자리한 전북 익산시 용안면 등의 논, 비닐하우스, 축사도 빗물에 잠긴 채 농민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한 농민은 “빨리 복구되더라도 문제인 판국에 비가 더 내린다고 하니 속만 터질 지경”이라고 말했다.
김민 기자 ki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