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위 수준으로 누적된 가계부채를 연착륙시키기 위해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의 적용 예외를 축소하는 등 거시건전성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한국은행 보고서가 나왔다. 다른 국가보다 느슨한 대출 규제를 그대로 놔둘 경우 가계부채 규모를 줄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강환구 한은 경제연구원 금융통화연구실 실장과 이경태 부연구위원은 17일 ‘장기구조적 관점에서 본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과 영향 및 연착륙 방안’을 주제로 한 이슈노트 보고서를 펴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4분기 기준 105.0%로 스위스(128.3%), 호주(111.8%)에 이어 주요 43개국 중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이었다. 2010년(14위) 대비 11계단이나 순위가 뛰었다.
가계부채 급증 원인으로는 기업대출 대비 가계대출의 높은 수익성과 안정성, 차주(대출자) 단위의 대출 규제 미비, 저금리 기조 장기화에 따른 자산 수요 증가 등이 꼽혔다. 특히 DSR 규제 도입 시기가 늦고, 적용 예외가 많은 점이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이 부연구위원은 “주요국은 2012년쯤부터 DSR 규제를 대부분 도입했다”며 “한국에서는 2019년 말에 본격적으로 시행됐고, 상당수가 여전히 DSR 규제를 적용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의 DSR은 기존 대출의 만기 연장 때는 적용되지 않고 신규대출·기존대출금 증액에만 적용된다. 또 대부분의 대출이 DSR 규제 적용을 받는 선진국과 달리 전세자금·중도금 대출, 1억원 이하 신용대출 등 예외 대상이 많다.
연구진은 높은 수준의 가계부채가 당장 금융 불안정을 확대할 위험은 제한적이라고 봤다. 하지만 장기성장세를 제약하거나 자산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등 부정적인 외부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 실장은 “가계부채 비율이 평균 70~80% 이내에서 관리될 때 거시경제나 금융시장에 미치는 부작용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덴마크 노르웨이 등이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100% 미만으로 줄이는 데 18년 걸린 만큼 한국도 가계부채를 줄이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연구진은 가계부채 연착륙 해법으로 거시건전성 규제 강화를 강조했다. 전세자금 등 대부분의 대출을 DSR 산정 대상에 포함하고, DSR 규제 도입 이전에 이뤄진 대출의 만기연장분에 대해서도 DSR을 점진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의 수준별 차등금리 적용, 만기일시상환 방식 대출에 대한 가산금리 적용 등을 통해 과도한 대출을 받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다만 이 부연구위원은 “당장 DSR 예외 대상을 축소하면 신용경색이 일어나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큰 로드맵 차원에서 (규제 확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