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영아 살해·유기범을 일반 살인·유기죄로 처벌하는 형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턱없이 가벼웠던 영아 범죄 규정을 바로잡겠다고 나섰다. 사람 생명은 그 무게가 다 같아야 하는데, 갓난아기 목숨을 성인보다 가벼이 여겨온 그롯된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옳은 결정이다. 형벌은 가치관을 반영한다. 지금 새겨야 할 가치관은 갓난아기라 해서 목숨이 가벼울 수 없고, 이를 망각하면 사람 목숨이 하찮아지는 야만의 시대가 펼쳐지리란 것이다.
진일보한 이 조치는 그러나 반쪽 대책이란 한계를 갖고 있었다. 처벌 강화는 범죄의 문턱을 높이는 일에 불과하다.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애초에 아기를 죽이거나 버리지 않게 범죄의 씨앗을 없애야 한다. 어떻게 해야 그럴 수 있는지, 이날 가동을 시작한 서울시 ‘위기 임산부’ 지원 체계가 힌트를 줬다.
서울시는 뜻하지 않은 임신, 경제적 부담, 사회적 편견에 출산과 양육을 포기하려는 임산부에 초점을 맞췄다. 아이를 낳고도 출생신고를 기피하는 상황을 막으려면 위기에 처한 임산부를 보호하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고 봤다. 이에 24시간 상담 창구를 운영하고, 맞춤형 공공·민간 서비스를 연계하고, 1대 1 관리로 산모와 아이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사업 얼개를 짰다. 모든 과정은 철저하게 익명으로 진행된다. 신분 노출 우려 없이, 소득과 혼인 여부에 상관없이 누구나 신속하게 보호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했다.
국민의 삶을 국가가 책임질 수 있는 범위에는 한계가 있다. 일일이 다 챙길 수 없다는 예산의 한계, 어디까지 개입할 것인가 하는 철학의 한계에 봉착할 때 누군가 그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다면 지금과 다른 세상이 펼쳐질 텐데, 이번에 서울시가 손을 들었다. 문제의 핵심임이 분명하지만 중앙정부가 해결할 순 없는 결정적 대목을 정확히 짚었다. 결코 쉽지 않을 이 사업이 순탄하게 진행되기를, 그래서 지방자치를 시행하는 본뜻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