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병들의 ‘쩐’쟁

입력 2023-07-22 04:08
게티이미지뱅크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수도 민스크에서 열린 고위 군 장교들과의 행사에 참석해 ‘드미트리’라는 전직 군 장교의 이름을 꺼냈다. 벨라루스인인 드미트리는 군에서 전역한 뒤 러시아 민간군사기업(PMC) 바그너그룹으로 가 최고위 간부 지위까지 올랐다고 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매우 뛰어난 군인이었다고 들었다”며 “누군가 드미트리처럼 바그너그룹에 가겠다고 한다면 막을 수 없다. 많은 돈을 벌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 다만 단호한 어조로 분명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졌다. “대신 매일 밤 돌격 소총을 베개 삼아 죽음과 함께 잠들 것이다.”

몸집 커진 PMC, 단순 ‘청부업자’ 아니다

지난달 발생한 바그너그룹의 무장 반란사태 이후 단순히 ‘전쟁 청부업자’로만 여겨졌던 PMC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바그너그룹 대원들은 지난달 24일 모스크바에서 약 200㎞ 남긴 지점까지 속전속결로 진격했다.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루카셴코의 중재로 철수를 명령하면서 ‘일일천하’로 끝났지만 미국 다음가는 군사강국으로 여겨졌던 러시아가 PMC에 전복될 뻔한 이 사건은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신(新)냉전 체제’가 전개되며 PMC 산업의 막대한 팽창이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 경제지 마켓워치는 지난 3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PMC 시장 규모가 5년 뒤인 2028년 3161억5200만 달러(약 407조4250억원)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규모는 2043억4700만 달러(약 263조4032억원)로 추정됐다.

PMC는 아프리카나 중동 등 분쟁지역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정치적 혼란과 국가 분열로 정규군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곳들은 모두 PMC의 무대가 된다. 군벌 간 무력 충돌로 분쟁 중인 수단에서도 PMC가 활동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2020년부터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두고 영토분쟁을 본격화한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간 전쟁에서도 PMC는 기정사실로 여겨진다.

일부 국가는 정부까지 나서서 정권 전복과 테러 행위 등을 보호해 달라며 PMC를 찾는다. 바그너그룹 역시 이런 방식으로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남미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미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 산하 안보·전략 기술센터의 페데리카 사이니 파사노티 연구원은 “분쟁국 지도자들은 용병을 필요로 한다”고 했다.

반란 실패 이후 바그너그룹이 철수한 중앙아프리카공화국과 시리아에서는 안보 공백이 발생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9일 보도했다. 바그너그룹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내에서 벌어진 정부와 반군, 군벌 사이에 벌어진 무력 분쟁에서 정부 측에 고용돼 채굴권을 획득하는 대가로 활동해 왔다. 하지만 최근 본국으로 돌아간 탓에 현지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시리아에서도 바그너그룹이 떠난 뒤 남부 팔미라 유전과 가스전은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공격으로부터 위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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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기업이 된 용병의 역사

전쟁과 파괴가 인류 역사에서 무수히 반복된 필연적 현상인 만큼 문명과 용병은 궤를 같이한다. 3700년 전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엔 용병 보수에 관한 규정이 명시돼 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도 용병을 고용했으며 동양에선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인 진(秦)나라가 국력이 쇠퇴하자 서북 오랑캐 등을 활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반도에서도 5세기 당시 왜(倭)인들이 백제 용병으로 활약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친 뒤 PMC라는 이름을 갖추며 기업화된 최초의 집단은 1965년 설립된 워치가드인터내셔널이다. 영국군 퇴역 장교 데이비드 스털링이 세웠다. PMC 소속 인원의 면면을 살펴보면 창립자는 물론 소속원들까지 전직 군인, 각국 정보기관 또는 국방부 관료 출신이 많다는 게 외신들의 설명이다.

현재는 워낙 음지에서 활동하는 경향이 짙어 이름이 알려진 PMC는 많지 않다. 유명 PMC로는 바그너그룹을 비롯해 미국 아카데미(구 블랙워터)와 다인코스, 영국의 G4S와 키니미니서비스, 이스라엘 로르단레브단, 시리아 ISIS 헌터 등이 있다. 이들은 분쟁국은 물론 미국과 여러 유럽국가 정부와도 계약해 활동한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전쟁과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PMC가 최전선에서 활약한 주요 현대전이다. 미군이 2011년 공개한 관련 보고서를 보면 이라크전에 투입된 PMC와 정규군 비율은 1.25대 1로 조사됐다.

역사적으로 비난 목소리 커

인류의 재앙인 전쟁과 테러를 비즈니스로 삼아왔던 용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강한 비난을 받아왔다. 사명감과 소명의식이 배제된 야만 행위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미국 하버드대 유전학자 데이비드 라이히는 2020년 발표한 논문에서 “그리스인들은 역사 기록에서 용병 역할을 최소화했는데 시민군과 호플라이트(보병)가 조국을 지키고 있다는 이미지를 투영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PMC는 계약 조건에 따라 정규군의 통제를 받고 전쟁 외에도 보안, 경호 등 전반적인 국가안보 사업을 영위한다는 긍정적인 성격도 있지만, 인권유린과 무자비한 살상을 허가받았다는 점에서 고대·중세의 용병과 다르지 않다.

미국 탐험가 로버트 영 펠튼은 이라크 전쟁을 목격한 뒤 자신의 저서에서 PMC를 “이데올로기도 조국도 깃발도 신도 나라도 없다. 오직 수표만 있을 뿐”이라고 비난했다.

제네바협약 47조는 용병을 불법으로 규정해 교전권을 부여하지 않는다. 유엔은 1989년 용병으로 인한 전쟁 폐해를 막기 위해 용병 동원 등을 반대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미 조지아대 인류학자 로리 라이츠마는 “(용병이라는) 노동자가 된다는 건 역사적으로 탐욕, 부패, 충성심의 변화, 문명사회의 몰락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한다”고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